영국 리테일의 심장부, 170년 만의 가장 큰 도박에 나서다
런던 옥스포드 스트리트. 연간 방문객 1억 명, 하루 30만 명이 오가는 유럽 최대의 쇼핑 거리가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M&S CEO 스튜어트 마친은 지난해 이 거리를 "국가적 수치(national embarrassment)"**라고 불렀다. 과장이 아니다. 269개 매장 중 42개가 공실—16%의 공실률은 영국 전체 하이스트리트 평균(14%)보다 높다. 탑샵, 아디다스, 러셀앤브롬리가 떠난 자리를 채운 건 '저급 리테일러'와 '촌스러운 캔디숍'이다.
그러나 2026년, 이 모든 것이 바뀐다.

170년 역사상 가장 과감한 실험
2026년 1월 1일, 옥스포드 스트리트 개발공사(OSDC)가 공식 출범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하다. 바로 '차 없는 거리' 다 오차드 스트리트에서 그레이트 포틀랜드 스트리트까지, 약 1.6km 구간에서 모든 차량, 버스, 택시, 자전거, 페디캡이 사라진다. 배송 차량만 자정부터 오전 7시 사이 진입이 허용된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사업체들은 매년 영국 경제에 250억 파운드(약 43조 원) 이상을 기여합니다. 버밍엄, 브리스톨, 뉴캐슬, 노팅엄, 리즈, 리버풀, 맨체스터, 셰필드의 모든 사업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시장의 말이다.
OSDC는 무엇을 하는가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는 소유 구조다. 인근 리젠트 스트리트는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대부분 소유해 입점 브랜드를 '큐레이션'할 수 있지만, 옥스포드 스트리트는 수많은 개별 임대인이 존재한다. 누가 들어오든 막을 방법이 없었다.
OSDC는 이 문제를 '소유' 대신 '권한'으로 해결하려 한다. OSDC는 옥스포드 스트리트와 주변 지역에 대한 완전한 도시계획 권한(full planning authority powers)을 갖는다. 웨스트민스터 구청이 아닌 OSDC가 건축 및 개발 허가를 내린다는 뜻이다. 필요하면 토지나 자산을 강제 수용할 수 있고, 사업세 감면 권한도 있다.
쉽게 말해, 건물을 사들여 직접 임대인이 되는 게 아니라, 허가권과 세금 혜택으로 원하는 브랜드는 끌어들이고, 원치 않는 업종은 밀어내는 방식이다.
OSDC는 보행자 전용화 추진, 공공 공간 조성, 이벤트 주최, 그리고 흥미로운 비즈니스 믹스를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반발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구청장 애덤 허그는 OSDC 첫 이사회에서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이 기구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여기 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자체 권한을 시장이 가져간 것에 대한 불만이다.
왜 지금인가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쇠락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팬데믹이 소비자 행동을 바꿨다. 영국 온라인 쇼핑 비중은 팬데믹 전 19.1%에서 현재 25.8%로 올랐다. 2024년 11월 기준 옥스포드 스트리트 방문객 수는 2006년 대비 43% 감소했다. 같은 기간 본드 스트리트는 2%, 리젠트 스트리트는 17% 감소에 그쳤다.결과는 비극적이다. 명품 브랜드가 떠난 자리에 단기 임대의 캔디숍과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다.
변화의 조짐
그러나 바닥을 찍으면 반등이 오는 법이다. 구 데벤햄스와 하우스오브프레이저 자리에 1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가 진행 중이다. 현대적 오피스 빌딩으로 탈바꿈하고, 마블아치에는 2만 5천 평방피트 규모의 모코 뮤지엄(Moco Museum)이 올여름 문을 연다.
이케아도 구 탑샵 자리에 2025년 봄 매장을 오픈한다. 아베크롬비앤피치는 옥스포드 스트리트와 코벤트가든에 새 매장 2곳을 열었다. 무엇보다, 6,000명 이상이 참여한 시민 설문에서 약 70%가 개발공사 설립을 지지했고, 3분의 2가 보행자 전용화를 찬성했다.
한국 리테일에 던지는 질문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는 전 세계 하이스트리트의 미래를 보여주는 선례가 될 것이다.
핵심은 '쇼핑'에서 '경험'으로의 전환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걷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셀프리지스 백화점 안에 시네마가 들어서고, 지속가능한 푸드 마켓과 이벤트 공간이 생긴다. 물건을 사러 오는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러 오는 거리로.
셀프리지스의 미브 월 리테일 총괄은 "보행자 전용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지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도, 강남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온라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대, 오프라인 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답은 명확하다—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라.
글 이동철 (하이엔드캠프) / highendcam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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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리테일의 심장부, 170년 만의 가장 큰 도박에 나서다
런던 옥스포드 스트리트. 연간 방문객 1억 명, 하루 30만 명이 오가는 유럽 최대의 쇼핑 거리가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M&S CEO 스튜어트 마친은 지난해 이 거리를 "국가적 수치(national embarrassment)"**라고 불렀다. 과장이 아니다. 269개 매장 중 42개가 공실—16%의 공실률은 영국 전체 하이스트리트 평균(14%)보다 높다. 탑샵, 아디다스, 러셀앤브롬리가 떠난 자리를 채운 건 '저급 리테일러'와 '촌스러운 캔디숍'이다.
그러나 2026년, 이 모든 것이 바뀐다.
170년 역사상 가장 과감한 실험
2026년 1월 1일, 옥스포드 스트리트 개발공사(OSDC)가 공식 출범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하다. 바로 '차 없는 거리' 다 오차드 스트리트에서 그레이트 포틀랜드 스트리트까지, 약 1.6km 구간에서 모든 차량, 버스, 택시, 자전거, 페디캡이 사라진다. 배송 차량만 자정부터 오전 7시 사이 진입이 허용된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사업체들은 매년 영국 경제에 250억 파운드(약 43조 원) 이상을 기여합니다. 버밍엄, 브리스톨, 뉴캐슬, 노팅엄, 리즈, 리버풀, 맨체스터, 셰필드의 모든 사업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시장의 말이다.
OSDC는 무엇을 하는가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는 소유 구조다. 인근 리젠트 스트리트는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대부분 소유해 입점 브랜드를 '큐레이션'할 수 있지만, 옥스포드 스트리트는 수많은 개별 임대인이 존재한다. 누가 들어오든 막을 방법이 없었다.
OSDC는 이 문제를 '소유' 대신 '권한'으로 해결하려 한다. OSDC는 옥스포드 스트리트와 주변 지역에 대한 완전한 도시계획 권한(full planning authority powers)을 갖는다. 웨스트민스터 구청이 아닌 OSDC가 건축 및 개발 허가를 내린다는 뜻이다. 필요하면 토지나 자산을 강제 수용할 수 있고, 사업세 감면 권한도 있다.
쉽게 말해, 건물을 사들여 직접 임대인이 되는 게 아니라, 허가권과 세금 혜택으로 원하는 브랜드는 끌어들이고, 원치 않는 업종은 밀어내는 방식이다.
OSDC는 보행자 전용화 추진, 공공 공간 조성, 이벤트 주최, 그리고 흥미로운 비즈니스 믹스를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반발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구청장 애덤 허그는 OSDC 첫 이사회에서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이 기구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여기 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자체 권한을 시장이 가져간 것에 대한 불만이다.
왜 지금인가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쇠락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팬데믹이 소비자 행동을 바꿨다. 영국 온라인 쇼핑 비중은 팬데믹 전 19.1%에서 현재 25.8%로 올랐다. 2024년 11월 기준 옥스포드 스트리트 방문객 수는 2006년 대비 43% 감소했다. 같은 기간 본드 스트리트는 2%, 리젠트 스트리트는 17% 감소에 그쳤다.결과는 비극적이다. 명품 브랜드가 떠난 자리에 단기 임대의 캔디숍과 기념품 가게가 들어섰다.
변화의 조짐
그러나 바닥을 찍으면 반등이 오는 법이다. 구 데벤햄스와 하우스오브프레이저 자리에 1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가 진행 중이다. 현대적 오피스 빌딩으로 탈바꿈하고, 마블아치에는 2만 5천 평방피트 규모의 모코 뮤지엄(Moco Museum)이 올여름 문을 연다.
이케아도 구 탑샵 자리에 2025년 봄 매장을 오픈한다. 아베크롬비앤피치는 옥스포드 스트리트와 코벤트가든에 새 매장 2곳을 열었다. 무엇보다, 6,000명 이상이 참여한 시민 설문에서 약 70%가 개발공사 설립을 지지했고, 3분의 2가 보행자 전용화를 찬성했다.
한국 리테일에 던지는 질문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는 전 세계 하이스트리트의 미래를 보여주는 선례가 될 것이다.
핵심은 '쇼핑'에서 '경험'으로의 전환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걷는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셀프리지스 백화점 안에 시네마가 들어서고, 지속가능한 푸드 마켓과 이벤트 공간이 생긴다. 물건을 사러 오는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러 오는 거리로.
셀프리지스의 미브 월 리테일 총괄은 "보행자 전용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지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도, 강남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온라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대, 오프라인 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답은 명확하다—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라.
글 이동철 (하이엔드캠프) / highendcam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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