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세계 최대 명품 그룹 LVMH가 보석 브랜드 티파니(Tiffany & Co.)를 약 158억 달러, 우리 돈 17조 원이 넘는 값에 사들였다. 명품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였다. 그런데 인수를 발표하며 LVMH가 내놓은 설명에는 매출도, 이익도, 점유율도 없었다.
대신 이런 문장이 있었다. "1886년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영원한 약속의 상징으로 정립한 이래, 티파니는 사랑을 상징해왔다." 17조짜리 베팅의 명분이 다름 아닌 '영원한 사랑'이었던 셈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인수 첫해 티파니는 LVMH에 약 60억 달러의 매출을 더하며 단숨에 그룹 내 2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보석은 LVMH가 가장 약했던 분야였지만, 인수 한 번으로 세계 주얼리 3위에 올랐다. 한 브랜드가 100년 넘게 쌓아 올린 '감정의 자산'이 통째로 거래된 것이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쳐 하이엔드 마케팅을 연구해온 저자는 이 거래에서 핵심을 읽는다. 오래 살아남은 브랜드일수록, 고객과 함께한 결정적인 '감정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기억의 총합이 곧 브랜드 가치다. 그가 7월 1일 쌤앤파커스에서 내놓는 신간 《감정 설계자》가 정확히 이 지점을 파고든다. 《한 덩이 고기도 루이비통처럼 팔아라》,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에 이은 하이엔드 마케팅 3부작의 완성편이다.
감정이 정말 돈이 될까. 데이터는 그렇다고 답한다.
예측분석 회사 모티스타(Motista)가 10만 명 넘는 고객을 추적한 결과, 브랜드에 감정적으로 연결된 고객은 그저 '만족한' 고객보다 두 배 이상 더 쓰고, 고객 생애가치(LTV)는 약 네 배(306% 높음)에 달했다. 브랜드와 함께하는 기간도 3.4년에서 5.1년으로 길었고, 추천하는 비율은 네 배 가까이 높았다. 감정은 변덕이 아니라, 가장 끈질긴 예측 지표였던 셈이다.
두 번째 신호는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와 알타감마(Altagamma)의 2025년 럭셔리 보고서다. 전 세계 럭셔리 소비는 약 1조 4,400억 유로. 시장은 정체됐지만 그 아래에서 무게중심이 '소유'에서 '경험과 감정'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보고서를 이끈 클라우디아 다르피지오의 결론은 분명했다. 쇼핑의 시대가 지난 자리에, 이제 경험과 감정이 럭셔리 성장의 진짜 엔진이 됐다는 것.
세 번째는 뇌과학이다. 구매 결정의 상당 부분은 의식이 끼어들기 전, 감정 회로에서 먼저 일어난다. 편도체가 '중요하다'고 신호하면 해마가 그 경험을 장기 기억에 새긴다. 흥미롭게도 한 실험에서는, 빈 티파니 상자를 보기만 해도 사람들의 심박수가 올라갔다. 상자 하나가 사랑과 설렘, 약혼의 기억을 통째로 불러낸 것이다.
세 지표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은 논리로 비교하지만, 선택은 감정이 먼저 한다.
감정은 '설계'된다
저자의 주장은 막연한 감성론이 아니다. 책 표지에는 프리즘 모양의 삼각형이 그려져 있다. 흰빛이 프리즘을 지나며 일곱 색으로 갈라지듯, "그냥 좋아요"라는 한 마디 안에도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를 혼합정서이론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감정 설계란 그 빛을 색깔별로 분해해, 어떻게 칵테일처럼 블랜딩하는 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작동 방식은 구체적이다. 룰루레몬은 '땀 흘리는 삶(Sweat Life)'을, 샤넬은 '여성의 자유'를, 디올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판다. 제품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고, 제품은 그 감정을 담는 그릇이다. 전기차 운전자들이 주행거리가 아니라 "기름이 손에 묻지 않는 청결함"으로 차를 기억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갖고 싶다'는 마음은 어떻게 '사야겠다'로 바뀔까. 저자는 피터팬을 빌려 설명한다. 네버랜드로 날아오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즐거운 상상, 그리고 팅커벨의 요정가루가 그것이다. 즐거운 상상이 '갖고 싶다'는 감정이라면, 팅커벨은 '괜히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다. 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장치를 설계하는 것 — 그것이 진짜 감정 설계다.
한(恨), 번역되지 않는 감정의 힘
여기서 저자는 한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AI가 정보를 평준화하는 시대에, 한국이 가진 무기는 '혼합 정서'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恨)이다. 한은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 기대가 한데 섞인 복합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아리랑 가사에는 슬픔과 기대가 동시에 들어 있다. 떠나는 게 슬프면서도, 발병나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 슬픈데 어딘가 웃기다.
이 혼합 정서가 한국 콘텐츠의 힘이다. 영화 〈부산행〉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유, 우리가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슬프면서 주저앉지 않고, 분노하면서 기대하는 감정. 세계인에게 이것은 일종의 감정의 신세계다. 단일 감정만 다루던 브랜드가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AI가 진짜가 되는 시대?
AI는 무엇이든 진짜처럼 만든다. 머지않아 AI 자체가 '진짜'가 되는 시대도 온다. 비스포크(bespoke)—원래 장인이 왕족에게만 제공하던 1:1 맞춤—를 이제 알고리즘이 누구에게나 해준다. 고객의 눈높이는 계속 올라간다. 그럴수록 복제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 복제 불가능한 감정이 브랜드의 마지막 해자가 된다.
저자는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을 끌어온다. AI가 기존 질서(正)를 빠르게 학습할수록, 거기서 반(反)을 끌어내는 브랜드가 가치를 얻는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둔 '신의 한 수'처럼, 인간만이 넣을 수 있는 변주를 해내는 브랜드가 끝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가공된 정보가 넘칠수록, 실제로 존재했던 서사—고난과 극복, 성취의 이야기—는 더 귀해진다.
브랜드의 진짜 자산, 감정
첫째, 기업의 진짜 자산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의 감정이다. 기술은 복제되지만, 한 브랜드가 100년간 쌓은 감정의 기억은 복제되지 않는다. 티파니의 17조가 그 증거다.
둘째, '왜 안 팔릴까'가 아니라 '어떤 감정을 줬는가'를 물어야 한다. 비싼 제품일수록 고객은 기능이 아니라 감정—자부심, 소속감, 설렘—을 산다.
셋째, 확장은 매출이 아니라 감정으로 판단해야 한다. 핵심 감정이 '여성의 아름다움'인 브랜드가 아동복으로 가면 실패하기 쉽다. 샤넬이 아동복을 만들지 않는 이유다.
빈 티파니 상자는 그냥 상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데도 심장이 뛴다. 그 안에 누군가 오래 설계해 둔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브랜드의 값은 기능이 아니라 욕망의 깊이에서 정해진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건네는 한 문장은 이것이다. 설명하지 마라, 설레게 하라.
17조 배팅의 진짜 이유
2021년, 세계 최대 명품 그룹 LVMH가 보석 브랜드 티파니(Tiffany & Co.)를 약 158억 달러, 우리 돈 17조 원이 넘는 값에 사들였다. 명품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였다. 그런데 인수를 발표하며 LVMH가 내놓은 설명에는 매출도, 이익도, 점유율도 없었다.
대신 이런 문장이 있었다. "1886년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영원한 약속의 상징으로 정립한 이래, 티파니는 사랑을 상징해왔다." 17조짜리 베팅의 명분이 다름 아닌 '영원한 사랑'이었던 셈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인수 첫해 티파니는 LVMH에 약 60억 달러의 매출을 더하며 단숨에 그룹 내 2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보석은 LVMH가 가장 약했던 분야였지만, 인수 한 번으로 세계 주얼리 3위에 올랐다. 한 브랜드가 100년 넘게 쌓아 올린 '감정의 자산'이 통째로 거래된 것이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쳐 하이엔드 마케팅을 연구해온 저자는 이 거래에서 핵심을 읽는다. 오래 살아남은 브랜드일수록, 고객과 함께한 결정적인 '감정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기억의 총합이 곧 브랜드 가치다. 그가 7월 1일 쌤앤파커스에서 내놓는 신간 《감정 설계자》가 정확히 이 지점을 파고든다. 《한 덩이 고기도 루이비통처럼 팔아라》,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에 이은 하이엔드 마케팅 3부작의 완성편이다.
감정이 정말 돈이 될까. 데이터는 그렇다고 답한다.
예측분석 회사 모티스타(Motista)가 10만 명 넘는 고객을 추적한 결과, 브랜드에 감정적으로 연결된 고객은 그저 '만족한' 고객보다 두 배 이상 더 쓰고, 고객 생애가치(LTV)는 약 네 배(306% 높음)에 달했다. 브랜드와 함께하는 기간도 3.4년에서 5.1년으로 길었고, 추천하는 비율은 네 배 가까이 높았다. 감정은 변덕이 아니라, 가장 끈질긴 예측 지표였던 셈이다.
두 번째 신호는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와 알타감마(Altagamma)의 2025년 럭셔리 보고서다. 전 세계 럭셔리 소비는 약 1조 4,400억 유로. 시장은 정체됐지만 그 아래에서 무게중심이 '소유'에서 '경험과 감정'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보고서를 이끈 클라우디아 다르피지오의 결론은 분명했다. 쇼핑의 시대가 지난 자리에, 이제 경험과 감정이 럭셔리 성장의 진짜 엔진이 됐다는 것.
세 번째는 뇌과학이다. 구매 결정의 상당 부분은 의식이 끼어들기 전, 감정 회로에서 먼저 일어난다. 편도체가 '중요하다'고 신호하면 해마가 그 경험을 장기 기억에 새긴다. 흥미롭게도 한 실험에서는, 빈 티파니 상자를 보기만 해도 사람들의 심박수가 올라갔다. 상자 하나가 사랑과 설렘, 약혼의 기억을 통째로 불러낸 것이다.
세 지표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은 논리로 비교하지만, 선택은 감정이 먼저 한다.
감정은 '설계'된다
저자의 주장은 막연한 감성론이 아니다. 책 표지에는 프리즘 모양의 삼각형이 그려져 있다. 흰빛이 프리즘을 지나며 일곱 색으로 갈라지듯, "그냥 좋아요"라는 한 마디 안에도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를 혼합정서이론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감정 설계란 그 빛을 색깔별로 분해해, 어떻게 칵테일처럼 블랜딩하는 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작동 방식은 구체적이다. 룰루레몬은 '땀 흘리는 삶(Sweat Life)'을, 샤넬은 '여성의 자유'를, 디올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판다. 제품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고, 제품은 그 감정을 담는 그릇이다. 전기차 운전자들이 주행거리가 아니라 "기름이 손에 묻지 않는 청결함"으로 차를 기억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갖고 싶다'는 마음은 어떻게 '사야겠다'로 바뀔까. 저자는 피터팬을 빌려 설명한다. 네버랜드로 날아오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즐거운 상상, 그리고 팅커벨의 요정가루가 그것이다. 즐거운 상상이 '갖고 싶다'는 감정이라면, 팅커벨은 '괜히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다. 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장치를 설계하는 것 — 그것이 진짜 감정 설계다.
한(恨), 번역되지 않는 감정의 힘
여기서 저자는 한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AI가 정보를 평준화하는 시대에, 한국이 가진 무기는 '혼합 정서'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恨)이다. 한은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 기대가 한데 섞인 복합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아리랑 가사에는 슬픔과 기대가 동시에 들어 있다. 떠나는 게 슬프면서도, 발병나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 슬픈데 어딘가 웃기다.
이 혼합 정서가 한국 콘텐츠의 힘이다. 영화 〈부산행〉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유, 우리가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슬프면서 주저앉지 않고, 분노하면서 기대하는 감정. 세계인에게 이것은 일종의 감정의 신세계다. 단일 감정만 다루던 브랜드가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AI가 진짜가 되는 시대?
AI는 무엇이든 진짜처럼 만든다. 머지않아 AI 자체가 '진짜'가 되는 시대도 온다. 비스포크(bespoke)—원래 장인이 왕족에게만 제공하던 1:1 맞춤—를 이제 알고리즘이 누구에게나 해준다. 고객의 눈높이는 계속 올라간다. 그럴수록 복제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 복제 불가능한 감정이 브랜드의 마지막 해자가 된다.
저자는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을 끌어온다. AI가 기존 질서(正)를 빠르게 학습할수록, 거기서 반(反)을 끌어내는 브랜드가 가치를 얻는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둔 '신의 한 수'처럼, 인간만이 넣을 수 있는 변주를 해내는 브랜드가 끝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가공된 정보가 넘칠수록, 실제로 존재했던 서사—고난과 극복, 성취의 이야기—는 더 귀해진다.
브랜드의 진짜 자산, 감정
첫째, 기업의 진짜 자산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의 감정이다. 기술은 복제되지만, 한 브랜드가 100년간 쌓은 감정의 기억은 복제되지 않는다. 티파니의 17조가 그 증거다.
둘째, '왜 안 팔릴까'가 아니라 '어떤 감정을 줬는가'를 물어야 한다. 비싼 제품일수록 고객은 기능이 아니라 감정—자부심, 소속감, 설렘—을 산다.
셋째, 확장은 매출이 아니라 감정으로 판단해야 한다. 핵심 감정이 '여성의 아름다움'인 브랜드가 아동복으로 가면 실패하기 쉽다. 샤넬이 아동복을 만들지 않는 이유다.
빈 티파니 상자는 그냥 상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데도 심장이 뛴다. 그 안에 누군가 오래 설계해 둔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브랜드의 값은 기능이 아니라 욕망의 깊이에서 정해진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건네는 한 문장은 이것이다. 설명하지 마라, 설레게 하라.
감정설계자 예약 판매 링크
📕 교보문고 : https://vo.la/E9HyeeX
📗 예스24 : https://vo.la/5XLqnta
📘 알라딘 : https://vo.la/ThoLeaV
#하이엔드데일리 #감정설계자 #이동철 #하이엔드브랜딩 #감정설계 #럭셔리트렌드 #브랜드전략 #LVMH #티파니 #모티스타 #베인앤컴퍼니 #한류 #혼합정서 #AI브랜딩 #쌤앤파커스 #브랜드북 #욕망의경제학
© 2026 하이엔드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본 기사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