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장사가 만든 맥주, 호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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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든(Hoegaarden) 하면 그 특유의 향긋함과 달콤함으로 ‘유후’ 소리를 내게 만들었던 첫 느낌이 떠오른다. 당시에 고만고만한 맥주 맛에 길들여져 있던 한국인들에게 ‘이런 맥주 맛도 있을 수 있네’라는 놀라움을 주었던 맥주다. 게다가 눈처럼 내린 거품의 모습은 이전의 맥주와는 확실히 다른 녀석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맥주였다.
호가든은 벨기에의 맥주다. 그 시작부터 호기심을 확 자극한다.

호가든의 창업자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는 사실 맥주제조업자가 아니다. 그는 호가든 공장 옆에서 우유를 팔던 우유 장사였다. 
1950년 호가든 지방의 ‘호가든 브루어리(Hoegaarden Brewery)’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아 밀맥주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것을 본 셀리스는 밀맥주의 수요를 확신하며 자신만의 양조장을 만들고 호가든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호가든의 창업자,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

오늘날 호가든은 벨기에 맥주기업 인터브루(Interbrew) 소속이지만 셀리스의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달콤한 맥주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셀리스는 호가든 매각 후 미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건너가 형제 맥주인 셀리스 화이트(Celis White)를 만든다. 호가든의 제조기법으로 만들었기에 호가든의 뿌리가 강하게 느껴지는 맥주다. 오늘날 셀리스 화이트는 밀러 브루잉(Miller Brewing) 소속이다. 상황을 바꾸는 데 있어 현재의 위치와 한 개인이라는 단점은 아무런 제한이 되지 않는 법이다. 벨기에의 우유 장사였던 셀리스, 한 사람의 힘으로 오늘날 벨기에의 밀맥주는 세계적인 위치를 곤고히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셀리스의 삶을 보면서 아쉬운 부분은 바로 사업 확대 시점에 대한 대처였다.

호가든이 인기를 끌면서 독일과 프랑스의 맥주 애호가들이 몰려오자, 셀리스는 이를 수용하기 위해 재정적인 무리를 해가면서 공장을 확장한다. 이것이 독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공장 화재까지 겹치면서 결국 호가든은 인터브루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셀리스가 무리를 하지 않고 천천히 공장을 확대했더라면, 수요에 응답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양만을 만들면서 천천히 갔다면, 오늘날 우리는 원조가 만든 더 깊은 맛과 향의 호가든 밀맥주를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인터브루가 기존의 호가든 지역에 있던 공장을 옮기고 세계 각지의 지역 제조업자들에게 제조권을 넘기는 대량 생산으로 들어가면서, 이전 호가든의 강한 브랜드 아우라가 아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TABLE CENTREPIECE / 빈 맥주병을 이렇게 쓸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재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