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은 왜 버질아블로를 선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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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이상 된 제품과 브랜드를 12살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그 일에 전문이다.”
- 버질아블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에게는 전설적인 스토리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데드스톡으로 구매한 40달러짜리 챔피온 티셔츠와 폴로 남방에 그의 어린시절 영웅 마이클조던의 백넘버 23 과 파이렉스(PYREX)라고 써서 크게 프린트한 뒤 550달러에 판매했다는 것그리고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엄청나게 팔려나갔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신화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의 빗장이 열리다

2018 3전 세계 패션업계를 뒤흔든 혁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루이비통이 오프화이트(OFF-WHITE)의 수장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것이다.
루이비통 설립 이래 164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수석 디자이너

게다가 그는 오프화이트라는 스트리트 브랜드의 수장이며심지어 패션스쿨을 나오지도 않았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는 굉장히 보수적이고배타적인 세계로 악명이 높다.
버질 아블로의 무엇이 그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일까.


소비층의 변화 :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스트리트브랜드

패션의 원래 뜻은 인기’, ‘유행이다즉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통해 그 생명력을 얻는 것이 패션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태생적으로 제한된 소수층에게만 허용되어 왔지만쉽게 향유할 수 없는 나머지 수많은 대중들에게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끊임없이 심어옴으로써 명품으로써의 위상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약 10여년 전부터 럭셔리 브랜드들의 매출성장폭은 유례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요인은명품 소비층이 급격하게 젊어지고 있었던 것글로벌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명품 매출 2600유로(334조원33%20-30대 밀레니얼 세대의 지갑에서 나왔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젊은 소비층은 가성비를 철저히 따지면서도가치 있다고 여기는 곳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기존의 명품 브랜드는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지만본인들이 열광하는 스트리트브랜드의 한정판 운동화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몇 백만원을 쓰는 식이다
 
이 같은 흐름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되어이미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여 스트리트 브랜드들과 다양한 콜라보를 시도했고이른바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를 발판으로 젊은 명품이 되기 위한 대대적인 혁신을 감행하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를 영입했으며구찌는 10년 이상 데리고 있던 수석디자이너를 내보내고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기용해 완전히 새로워진 구찌로 젊은 층의 호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루이비통마저 슈프림과의 콜라보로 거둔 거대한 성공의 단 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스트리트브랜드 태풍의 핵,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를 영입함으로써 주류 패션계는 이제 완전히 다른 항로를 타기 시작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출처] 2018 [시스템]매거진 10호 표지



WHAT IS Vergile Abloh? - 버질아블로 현상

천부적인 재능과 자기만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개인브랜드로 성공했던 디자이너들이 유럽의 유명 패션하우스에 입성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버질아블로의 경우는 좀 다르다루이비통이 그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그의 디자인 능력을 사기 위함이 아니다

오프화이트라는 브랜드의 대표라는 것은 그의 직함일지언정 그의 활동영역과 영향력은 오프화이트에 국한되지 않았다
오프화이트는 그 브랜드 자체의 특성보다 버질 아블로의 존재를 통해서 인지도를 높이고 팬들의 충성도도 높아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버질 아블로 현상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하고작년 시스템 매거진에서는 버질아블로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WHAT IS Virgil Abloh 버질 아블로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그를 인물이 아닌 현상으로 다루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수많은 미디어와 비평가들이 그에 대해 분석한 내용들을 종합해서 그의 성공비결을 정리해보면한 마디로 그는 지금 이시대가 요구하는 최적최고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브랜딩마케팅을 포함한 디렉팅을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진정성 수행해 내고있는 소통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정확히 파악한 후    
그 안에서 혁명적인 것을 내놓으려 했다. ”
- 버질아블로



철저하게 계산된 디렉팅

버질 아블로는 디자이너라기보다는 Thinker(사상가)이자 Director 디렉터에 가깝다.
그리고 이 시대의 트렌드와 소구점에 대해서 일반 마케터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전략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끌고 있는 오프화이트(OFF-WHITE)는 현재 하이엔드 스트리트 브랜드의 최정점에 있는데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2년 그가 최초로 런칭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그야말로 한땀 한땀 전통적 방식으로 디자이너가 직접 바느질제단을 하여 옷을 만들던 장인디자이너의 시대가 지나고소위 수석디자이너가 구상한 컨셉에 따라 실제 옷은 전문적인 패턴사나 샘플사 같은 기술사가 만들어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지금의 명품과 패션에 대해 그가 던진 일침이다
디자이너의 도안을 찍어내고 상표를 부착하는 것으로 몇십배의 가격이 책정되는 명품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를 묻고있는 것이다.
이를 그의 크루들이 나누어 입고 메시지를 담은 영상도 만들었다
의상 자체의 힙한 느낌은 물론이고스트리트컬쳐의 하나인 그라피티를 활용한 것들 모두가 Youth Always Wins(젊은이들이 항상 이긴다)라는 그가 내건 시즌 컨셉으로 귀결되었다.
그는 이미 이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테다

스트리트컬쳐에 열광하는 지금의 젊은 층이 패션산업의 주도세력이라는 것을.
칸예웨스트의 아트디렉터로써 앨범아트 작업이 인정받고유명한 패션 셀레브리티이기도 했던 칸예웨스트의 곁에서 현장감을 익힌 그가 독보적으로 내딛은 첫 행보에서 그는 그가 가진 모든 자산을 백분 활용했다

퍼포먼스 자체로도 충분히 도발적이었지만칸예를 비롯한 그의 주변 셀럽들이 파이렉스를 입은 사진들이 SNS에 자주 노출되면서 셀레브리티 마케팅 효과를 극대치로 끌어올렸다
이 또한 그에게는 애초에 계획된 부분이었을 것
파이렉스는 그가 구상하고 계획한 대로 지금의 밀레니얼세대들에게 손짓을 보내어 두터운 지지층을 형성함과 동시에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구매욕을 자극하여 엄청난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다.


좌측이 <파이렉스>의 셔츠, 우측이 <오프화이트>의 셔츠. 오프화이트는 파이렉스의 리뉴얼브랜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담이지만, 보관용기를 생산하는 기존의 PYREX파이렉스社의 상표권 소송에 패소하여 해당 브랜드명을 쓸 수 없게 되자 아예 새로운 브랜드명으로 재런칭한 것이 오프화이트다. 
이 때부터는 직접 소재나 형태 등을 디자인하기 시작하여 독자적인 브랜드의 틀을 갖추긴했지만, 기본적인 컨셉과 정신은 파이렉스를 계승하고 있다.  


패션계의 BTS- 현 세대와 호흡하는 커뮤니케이터

20194버질 아블로는 디자인 프라이즈 (디자인붐 주관)에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부문은 브랜드,캠페인,또는 특정 프로젝트나 제품이 후보가 되는 부문인데유일하게 인물로써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하게 되어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버질 아블로 현상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는 단순한 디자이너 혹은 디렉터가 아닌 하나의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는 최근 글로벌 대중음악계의 하나의 현상으로 불리는 BTS와도 겹쳐진다

음악성이나 춤 자체로는 BTS보다 더 뛰어난 가수들이 많겠지만지금의 젊은 세대와 실시간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진정성 있게 소통하여 두터운 지지층을 양산해낸 것과 버질아블로의 행보는 많이 닮아 있다
BTS가 그저 우연히 대박이 터진 것이 아닌 것처럼 버질 아블로 또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그러나 전략적으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해왔다
이미 패션업계의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1년의 300일 이상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세계 각지에 있는 다양한 그들을 향해 그의 소통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 시대의 걸출한 커뮤니케이터로써의 그의 활약이 앞으로도 우리에게 감탄과 영감을 선사해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 패션은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 놓은 걸 사람들이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
- 버질아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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