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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다가오는 AI 데이터 센터 시대에 승자가 될 수 있을까? [AI인프라전쟁1]

AI 인프라 전쟁의 구도가 잡히고 있다. 미국 빅테크가 수천억 달러를 쏟아 데이터센터를 짓고, 사우디·UAE가 국부펀드로 메가와트급 시설을 통째로 세우고, 유럽은 전력난에 허덕이며 북유럽과 스페인으로 밀려난다. 이 전쟁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AI를 대규모로 '돌리는' 나라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AI를 돌리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를 '만들어 파는' 나라가 될 조건은 갖추고 있다. 문제는 그 조건이 자동으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운용이 가능한 나라가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
AI 인프라 전쟁에서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싸고 풍부한 전력, 넓은 토지, 빠른 인허가. 한국은 셋 다 약하다.
수도권 대형 데이터센터가 몰린 평촌·김포·용인 등은 이미 전력 공급이 적색 신호 수준이며, 신규 전력 인입 승인까지 3~5년이 걸린다. 데이터센터 운영 용량의 73%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바로 그 수도권의 송전망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2024년 8월부터 약 11개월간 전국에서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력 신청 290건 중, 수도권 195건의 산업부 심사 통과율은 2.1%에 불과했다. 100건 중 2건만 통과. 나머지 98건은 전기를 연결받지 못해 멈춰 있다는 뜻이다.
비수도권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는 지역 난방·물 사용·토지 이용·그린벨트 해제 등 다양한 문제와 얽혀 있어 지역사회와의 충돌 요인이 많으며, 실제로 여러 지자체에서 주민 반발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여름 고온다습 기후는 냉각 비용을 끌어올린다.
한전에 제출된 데이터센터 전기 사용 신청 용량은 2023년 906MW에서 2027년 7,343MW로 약 8배 증가했지만, 공급 가능한 전력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전은 경영난으로 2026년까지 송·변전망 투자 축소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가 데이터센터 입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인건비나 세금이 아니라 전력 단가·전력 안정성·송전망 인프라다. 이 기준에서 한국은 사우디, 북유럽, 미국 텍사스·버지니아와 경쟁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세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지을 이유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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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에는 '다른 히든 카드'도 있다
AI 인프라 전쟁은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나라만의 게임이 아니다. 그 데이터센터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나라의 게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강한 패를 쥐고 있다.
첫 번째 카드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다. AI 칩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NVIDIA의 최신 GPU에 들어가는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세계에 세 곳뿐이고, SK하이닉스가 그중 시장점유율 1위다. HBM은 2026년까지 전량 매진 상태다.
두 번째 카드가 두산에너빌리티다. AI 데이터센터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24시간 끊기지 않는 안정적 전력이다. 이 전력을 만들어내는 장비가 가스터빈과 소형모듈원전(SMR)이고, 두산은 이 둘을 모두 만든다.
가스터빈 쪽 성과는 이미 나오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6년 3월, 미국 빅테크와 380MW급 가스터빈 7기, 약 1.2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GE와 지멘스는 이미 2029년까지 수주가 꽉 차 있기 때문에, '납기를 맞출 수 있는 업체'가 곧 경쟁력이 된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2025년 신규 수주는 전년 대비 106% 증가한 14조7천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SMR은 더 큰 그림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8,068억 원을 투입해 창원에 SMR 전용 공장을 구축하며, 연간 20기 이상 생산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두산이 노리는 포지션은 'SMR의 TSMC'다. 설계는 미국의 뉴스케일이든, 엑스에너지든 각자 하고, 핵심 기자재는 두산이 찍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세 번째 카드는 한국의 원전 건설 경험 자체다. 체코 신규 원전 수주, 폴란드·사우디 등 추가 수주 가능성은 단순한 건설 프로젝트가 아니다. 원전 한 기를 지으면 설계부터 기자재, 유지보수까지 수십 년간 매출이 이어진다.

정리하면 이런 구조다
AI 인프라 전쟁을 운동장에 비유한다면 다음과 같다. 
- 운동장의 주인 — 데이터센터를 자국에 유치해 AI를 직접 '돌리는' 나라. 미국, 사우디, UAE, 북유럽이 여기에 해당한다.
- 운동장의 건축자재 공급자 —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만들어 파는 나라. 대만(TSMC 패키징), 한국(HBM·가스터빈·SMR), 일본(반도체 소재·장비)이 여기에 해당한다.
- 운동장의 단순 사용자 — AI 서비스를 사용하지만 인프라에는 기여하지 못하는 나라. 대부분의 국가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한국의 현실적 포지션은 두 번째다. 그리고 솔직히, 두 번째 역할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익률로 따지면 더 좋을 수도 있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쪽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야 하고 전력비·토지비 리스크를 떠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HBM이나 가스터빈을 파는 쪽은 수요가 확실한 상태에서 기술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될 수 있다'와 '되었다'는 다르다
문제는 이 유리한 패가 자동으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가지 변수가 결과를 흔들 수 있다.
첫째, SMR의 시간표다. 가스터빈은 지금 당장 팔리고 있지만, SMR은 아직 상용화 전이다. 한국형 혁신 SMR(i-SMR)의 표준설계인가 완료는 2026년 목표이고, 실제 상용 가동은 2028년 이후다.
둘째, 한국 내 산업 인프라의 연결성이다. HBM은 SK하이닉스, 가스터빈·SMR은 두산에너빌리티, 원전 설계는 한전·한수원·한국원자력연구원. 개별 역량은 세계적이지만, 이것이 하나의 통합된 'AI 인프라 공급 패키지'로 묶여 있지 않다.
셋째, 국내 수요 기반의 부재다. 자국 내에 대규모 AI 인프라가 없으면 레퍼런스와 실증 경험에서 뒤처진다. 한국에서 AI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돌려본 경험이 쌓여야, 거기서 나온 기술적 피드백이 수출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반도체에서 '메모리 강국'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AI 인프라 전쟁에서도 이에 필적하는 정체성을 만들 수 있을까. 'AI 전력장비 공급 강국', 'SMR 파운드리 국가' — 이런 포지션이 현실이 되려면,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 간 연결, 정부의 인허가 속도, 국내 실증 인프라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AI 모델 전쟁에서 한국은 존재감이 미미했다. AI 인프라 전쟁에서는 다르다. HBM과 원전 기자재라는 분명한 무기가 있다. 그러나 무기를 갖고 있는 것과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패를 쥐었으니 이제 어떻게 치느냐가 남았다.

이주안 | 하이엔드전략연구소장 | hesi.research@gmail.com ⓒ 하이엔드전략연구소(HESI) & 하이엔드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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