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인기글 >

흑곰, 오토바이에 치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에 던 (DUNN)市에는 데일리 레코드라는 지역 신문이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의 구독률은 상식 밖이다. 공식 발표된 데일리 레코드의 구독률은 112%. 던의 모든 집들이 보고도 12%가더 본다는 것이다. 유령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가정이 성립해야 한다. ‘한 집에서같은 신문을 아내와 남편이 각각 신청해서 보거나, 심지어 던에 살지 않는 외부인이 데일리 던을 굳이 구독해서 본다’. 도대체 데일리 던에 어떤 마력이 있길래 이런 경이적인 수익률이 나오는 걸까.

대부분 美유력지들이 ‘美국방정책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급진정당 평화조약에 합의!’, 그리고 ‘테헤란에서 깜짝 놀랄 개혁 정책이 시작되다!’라는 정치와 외교문제를 대문짝만한 헤드라인으로 다룬 날, 데일리 레코드만은 한가롭게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다.


‘흑곰, 오토바이에 치이다'(A black bear struck by a motorist)’!!


던의 한 거리에서 최근 흑곰들이 연이어 로드킬을 당하고 있고 이것은 곰 특유의 배회 습관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죽은 곰의 사체를 가져가거나 뼈나 이빨을 파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민에게 알리는 기사였다. 데일리 레코드가 보기에는 미국의 국방정책보다 던의 흑곰이 죽은 것이 더 중요하다. 이유는 그들만의제작방침에 있다.

 ‘던을 기억하라, 빅뉴스는 잊어라’

데일리 레코드는 인구가 1만 2천명인 소도시 던의 정보를 완전히 꿰뚫고 있다. 누가 이사를 오고 누가 이사를 나갔으며, 벼룩시장은 어디서 열리고, 잘나가는 가게는 어떤 곳인지, 세일은 언제 하는지, 내 이웃집의 경조사가 생겼는지 알기 위해서 던의 사람들은 누구든 반드시 데일리 레코드를 보아야만 한다. 그뿐 아니다. 던에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에게도 데일리 레코드는 가장 중요한 홍보매체다. 데일리 레코드를 통하지 않고서는 주민들 구석구석에 도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데일리 레코드는 던을 수십년간 지배해온 지역 독점 언론이다.하지만 던의 그 누구도 데일리 레코드에 불만이 없다. 오히려 데일리 레코드가 그들이 알고 싶은 마을의 은밀한 정보를 일목 요연하게 알려주는 것에큰 감사를 표한다. 데일리 던과 주민들은 떨어져 있지 않다. 주민들은 데일리 던에 궁금한 기사가 있다고알아봐 달라고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보낸 뒤에, 다음날 신문에 실렸는지 흥미진진하게 확인을 한다. 그리고 신문에서 아는 친구나 이웃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를 발견하고 정신없이 코를 파묻고 읽는다. 데일리 레코드의 독자들은 오늘은 우리마을에 무슨일이 있어났을까 매일 설레이며 신문을펼친다. 편집자인 후버 아담스는 데일리 레코드가 독점적인 위치를 지키기 위한 원칙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주민들은 자기가 아는 이름과 사진을 보기 위해 지역 신문을 구독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지요. 우리들은 독자들이 다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정보들만 다룹니다” 그는 이어서 선을 긋듯 확고한 편집 사례를 들어준다.

< 데일리 레코드의 고집불통(?) 편집장, 후버 아담스 >

"만일 이웃 도시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그 파편이 던지역까지 날아오지 않으면 데일리 레코드에 실리지 않을겁니다”


데일리 레코드가 비록 외부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지라도, 전국적인 뉴스를 다루지 않더라도, 미래가 암울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던에 사는 1만 2천명의 주민들은 차라리 식료품 지출을 줄일지언정 데일리레코드를 끊은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데일리 던 신문의 사례를 흥미있게 보고 있을 때쯤 나는 웹서핑을 하다가 워렌버핏의 특이한 자산 인수 기사를 보게되었다. 그는 지방 신문을 무려 10개나 인수하고 있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인수는 데일리 던이 가지는 강한 지역 독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상당히 일리있는 투자로 변한다. 특히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지의 지분을 소유한 이유에 대해서 ‘연방정부의 뉴스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투사 사유는 명확하다. ’워싱턴 정가에서 누가 들어오고 나갔는지,권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를 알려면 반드시 워싱턴 포스트를 보아야 한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네의 정보는 아주 큰 정치기사나 경제기사보다 더 흥미롭다. “근처 병원에서 한 100미터 쯤 있는 장어집 아시죠?” 어느 날 얼굴피부가 좀 상해서 피부관리를 받으러 갔던 동네 피부관리샵에서 나는 솔깃한 동네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건너편에 있는 곰탕집도 그 집 사장님이하는거에요. 그 동네 인근에 무려 10개나 하고 있는 걸요” 피부관리실이란 곳이 어색해서 조용히 마사지만 받고 나오려고 했던 한 뻘쭘男은 그렇게 대화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동네 사람들이 잘가는 석쇠구이집과 곰탕집,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장어집의 주인이 모두 한 사람이며 그 사람은 돈을 꽤 벌어 서울에서도 특급 주거지인 동네에서 최고급 빌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이어 관리샵원장님은 아파트에서 불이 났던 집이 인테리어를 어디서 했는지, 며칠전 경찰차가 왜 출동했는지에 대한 것 까지 동네의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알게 됐다. 상가 안쪽에 간판조차 허름하게 붙어있는 피부관리샵이 문전성시인 이유는 단지 피부관리를 잘해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웃나라 대통령이한 UN연설보다 옆동 아파트 이웃의 도둑맞은 사연이 훨씬 더 흡인력이 있다. 하지만 동네 정보는 그저풍문으로 흘러다닐 뿐 누구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동네에서 가장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돼지엄마’라 부른다. 아이학원정보를 포함해 동네정보를 꿰뚫고 있어서 정보에 갈급한 아줌마들을 줄줄달고다닌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돼지엄마가 주는 정보때문에 그 앞에만 가면 늘‘을’이 된다. 만약 돼지 엄마가 아니라 구독료만 내면 되는 우리동네 ‘데일리 던’이 있다면 나는 당장 구독신청을 할 것이다. 

데일리 던이 독점한 것은 바로 동네라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공간에서의 힘은 어떤 브랜드 보다 강하다.






타 분야 인기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