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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담은 빈티지가 시간을 거슬러 진정 강한 이유

오래된 것들의 가치


요즘 한국 가요 1위는 실시간으로 결정됩니다. 실시간 1위이니 1위에 오른 시간을 일수가 아니라 분초 단위로 따집니다. 최근 실시간 1위 곡의 평균 수명은 1.9일입니다. 24시간도 안 되어 퇴위를 당한 비운의 곡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빨리 오르고 그만큼 급하게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10주간 1위에 머무는 노래도 적지 않았죠. 전 국민이 몇 가지 노래에 함께 열광했고 같이 즐겼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가요톱텐이라는 순위프로그램에서 가왕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가 무려 10주간 1위를 하며 독주의 끝이 보이지 않자, 골든컵제도를 전격 도입해 5주연속 1위이면 골든컵을 받고 명예졸업을 시키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예전보다 더 다양한 곡이 쏟아지고 더 많이 듣는데 그만큼 문화생활이 더 풍족해지는 걸까요. 어쩌면 아쉬움이 더 큰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오래되고 한결같은 빈티지에 대한 선호가 갈수록 늘고, 사업에 적용되는 성공사례도 늘고 있으니까요.


 한국 프리미엄 과자 브랜드 '마켓오'의 경우 건강하고 고급 이미지를 주기 위해 닥터 유와 마켓오를 출시할 때 빈티지마케팅을 실행했습니다. 표지는 앞치마를 두른 미국 80년대 중산층 가정주부의 넣어서 친환경적이면서 빈티지한 디자인을 메인으로 내세웠습니다. 처음에 이 패키지를 보고 가격을 한번 보고 좋은데 비싸긴 하다 얼마나 팔릴까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켓오와 닥터 유 등 프리미엄 라인의 매출액 폭발하는 것보다 이 프리미엄 제품들이 대표선수로 선두에 섬으로써 다른 제품들 역시 한국을 넘어 중국, 아시아 등 각 지역에서 안착할 수 있는 마케팅 동력을 제공해주는 것이 역할이 더 큽니다. 중요한 것은 마켓오의 철학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켓오가 출시된 지 10여 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오리온은 마켓오 네이처를 중심으로 지속해서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등 하이엔드 전략이 갈수록 뒷심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오리온 official 홈페이지


빈티지 전략은 매스브랜드의 경우에도 가치를 올리는 것에 사용 가능합니다. 이케아는 75주년 기념으로 빈티지 컬렉션인 그라툴레라(GRATULERA)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습니다. 이케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4가지 빈티지 디자인을 출시함으로써 이케아의 역사를 잔잔히 회고하고 있는데 조용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빈티지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이케아와 같이 대량으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매스브랜드에서 보기 힘든 뜻밖의 마케팅으로 신선한 반향을 불러온 것입니다


’80s design icons in limited GRATULERA collection >>



https://www.youtube.com/watch?v=fl_yxsKXu9E

IKEA 75 GRATULERA


빈티지가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할머니 패션이라고 불리는 요술버선, 몸뻬바지 등은 디자이너들 영감의 천국이 되고 있습니다. 패션잡지 보그(vogue)는 박막례 할머니의 패션을 처음 보고 베트멍 컬렉션을 연상시킨다며 관심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일본 관광객들은 꽃무늬가 화려한 할머니 요술버선을 사러 남대문 시장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평범하거나 아니면 촌스럽다고 여기는 것들.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최신의 유행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그 유행을 유리는 재해석하고 빈티지라고 부르며 즐기는 것입니다. 새것 새 제품이 넘쳐납니다. 밥을 첫술을 뜰 때는 너무 맛있지만 10번째 뜰 때는 심드렁해집니다. 이를 경제학에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것이 많아진다고 만족과 행복이 그만큼 커지지 않습니다. 이는 한계 행복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만족의 총량은 오히려 줄이는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뜻밖의 통계가 있습니다. 향후 소비를 선도할 z세대들에게 제품 구매 의사조사를 했더니새제품을 사면서 왠지 죄책감을 느낀다는 답이 70%가까이 나온 것입니다. 환경교육을 철저히 받은 세대들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에 대해 심리적 저항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제품메이커는 자신들의 제품들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곳들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속도로에는 인기곡 1위를 선정하는 하이샵 차트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12주씩 1위를 하는 곡들, 예를 들면 윤주현의 천태만상 같은 곳들이 나옵니다.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의외로 가장 느린 문화가 남아있던 셈입니다. 얼마 전 나이키의 런닝화 문슈 한 켤레가 약 5억 원에 팔려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느리다는 것 오래되었다는 것, 일반적인 개념이 전부가 아닙니다. 왜 느린 건지, 어떤 것이 오래되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느리게 가야, 오래되어야 가치가 더 의미가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빈티지의 조건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볼 때 무조건 오래되면 뜨는 것이 아닙니다. 빈티지 가구가 뜨는 공식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빈티지 가구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디서 만들었는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빈티지 가구가 된 극적인 사례로 스위스 건축가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의 파키스탄 '찬디가르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피에르 잔드레는 찬디가르 시를 설계하면서 관공서의 넣을 의자들까지 디자인했습니다. 대단히 견고하며 유분을 함유해 수분과 부패에 강한 티크와 붉은 빛을 띤 갈색으로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로즈우드 나무를 쓰는 등 최고의 재료를 쓴 의자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피에르의 이 의자들은 곳곳에 방치되고 쓰레기장에 버려졌지만 어느 날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수집가들의 눈에 띄면서 운명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의자로 쓸 수 있을 만큼 견고함을 가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의 흔적까지 간직한 놀라운 골동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 옛날 피에르의 의자는 개당 1000만 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마저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피에르 잔느레라는최고의 건축가가 자신의 혼을 바쳐 도시를 설계하고 그곳에 맞게 세월을 이겨낼 견고한 의자를, 동남아산 나무를 써서 만들어내었다는 사실이 수집가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잔느레의의자에서 보듯 빈티지에서 중요한 것은 에이징(Aging)과 파티마(Fatima)입니다.

찬디가르 프로젝트에 사용된 의자 (출처 : 1stdibs)


https://youtu.be/KygI1m2Mp1E


피에르 잔니에르의 '찬디가르 프로젝트'


에이징은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질감과 색상이고, 파티마는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 흠집입니다. 최초의 제품은 누구나 멋지게 똑같이 만들 수 있지만, 시간과 흠집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빈티지에는 새것이 줄 수 없는 시간과 추억이라는 코팅이 한 번 더 입혀져 있던 셈입니다. 이러한 가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산 명품 가구 중의 하나로 꼽히는 무와소니에(Moissonnier)는 새 가구를 만들고 아예 책상다리에 의도적으로 흠집을 냅니다. 워낙 자연스럽게 내어 마치 진짜처럼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오래된 에이징과 파티마라는 빈티지의 조건을 탐한 사례입니다. 핀율이나 아르네 야콥슨 같은 북유럽 유명 건축가의 의자는 같은 모델이어도 새 제품보다 빈티지 제품의 가격이 약 3배 정도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패션 트랜드를 선도하는 이랜드에서는 트랜드는 빈티지에서 시작한다는 최고경영자 박성수회장의 신념에 따라, 빈티지 의류를 모아 패션연구소를 아예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유행은 대략 1세대를 건너뛰어 약 30년 주기로 순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사업에 반영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빈티지가 유행한다는 것은 선진국이 되었다는 증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것이 이제 오히려 흔해지고, 쉽게 부수기보다 어렵게 지키고 노력이 더욱 소중하게 평가받는 것. 즉 오래동안 유지된 것들의 가치가 가장 귀해지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게 맞지 않을까요? 정말 소중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올라가죠. 우정, 사랑, 미술 작품, 와인, 클래식 카 같은 것들까지 말이죠.


빈티지의 미학. 그것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존재하고 나아가 시간이 지나갔을때 오히려 더 귀해지는 것. 디지털 시대에 가장 강한 것은 가장 디지털 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닐 것입니다.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숫자와 메탈로 대체할 수 없는 아날로그는 다이아몬드처럼 더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더 귀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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