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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의 완전 전기차 모델, 토르칼은 어떤 모습일까?

엔진 소리와 드럼 연주를 나란히 틀어놓고, 개발자들은 그 사이를 걸어 다니다. - 벤틀리가 107년 만에 처음으로 엔진 없는 차를 만들며 가장 먼저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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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성 스피커 두 대 사이를 걸으며 V8 엔진음과 드럼 연주를 비교하는 벤틀리 개발팀.  사진 = 벤틀리모터스


두 개의 스피커 사이를 걷다


영국 크루(Crewe)의 한 작업장. 지향성 스피커 두 대가 마주 보고 놓였다. 한쪽에서는 벤틀리의 6.75리터 V8 엔진 소리가 흘러나온다. 다른 쪽에서는 사람이 실제로 두드리는 드럼 연주가 흘러나온다. 개발팀은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무엇을 확인하려던 것일까.

결과는 이랬다. 두 소리는 에너지도, 박자도, 사람에게 주는 감정적 충격도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리고 하나가 더 드러났다. 내연기관은 완벽하게 균일하지 않다는 것.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아주 조금씩 어긋난다. 드러머가 그렇듯이. 그 흔들림이야말로 엔진 소리에 ‘사람 같은 느낌’을 주는 정체였다.

여기서 벤틀리는 큰 결정을 내린다. 엔진 소리를 흉내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의 전기차는 스피커로 ‘엔진 비슷한 소리’를 재생한다. 벤틀리는 그 길을 버렸다. 대신 세계적 연주자들을 불러 드럼, 비올라, 베이스 기타로 완전히 새로운 곡을 실제 연주해 녹음했다. 이름은 ‘벤틀리 다이내믹 심포니(Bentley Dynamic Symphony)’.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복제한 것은 소리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재료는 완벽함이 아니라 미세한 불완전함이었다.

이 한 번의 실험이, 앞으로 나올 차 전체를 설명한다.

벤틀리 완전 전기차 모델, 토르칼


2026년 9월 23일, 런던. 벤틀리는 창립 107년 만에 처음으로 엔진이 없는 차를 공개한다. 이름은 토르칼(Torcal). 컨티넨탈 GT, 플라잉 스퍼, 벤테이가에 이은 네 번째 모델 라인이다.

이름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석회암 지대 ‘엘 토르칼 데 안테케라(El Torcal de Antequera)’에서 왔다. 수백만 년 동안 비와 바람이 바위를 한 겹씩 깎아 만든, 미로 같은 기암괴석 지대다. 벤테이가(카나리아 제도의 산), 바칼라(멕시코의 호수), 바투르(발리의 화산)로 이어진 벤틀리식 작명법 그대로다.

여기에 우연이 하나 겹친다. 토르칼의 어원인 라틴어 ‘토르퀘레(torquere·비틀다)’는 자동차의 회전력을 뜻하는 ‘토크(torque)’와 뿌리가 같다. 자연 경관과 전기 모터의 핵심 물리량이 한 단어에서 만난 셈이다.

프랑크-슈테펜 발리저(Frank-Steffen Walliser) 벤틀리 회장의 표현은 이렇다. “벤틀리 역사상 가장 섬세하게 조율된 모델.” ‘가장 빠른’도 ‘가장 비싼’도 아니다. 단어 선택이 이미 방향을 말하고 있다.


전면 그릴은 진정한 상징이다. 


전기차에는 라디에이터가 없다. 식힐 것이 없으니 그릴도 필요 없다. 대부분의 전기차가 앞면을 매끈한 판으로 덮는 이유다.

토르칼은 반대로 간다. 앞면에 ‘플로팅 다이아몬드 그릴(Floating Diamond Grille)’이 붙는다. 이 다이아몬드 무늬의 출발점은 1920년대다. 당시 벤틀리는 키 큰 라디에이터를 돌멩이로부터 보호하려고 철망을 덧댔다. 순전히 실용적인 조치였다. 그 무늬가 이후 스위치의 미끄럼 방지 홈으로, 시트의 퀼팅으로, 벤테이가의 헤드램프 디테일로 100년을 살아남았다.

이제 그것은 아무 기능도 없다. 공기를 통과시키지도, 무엇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오직 ‘벤틀리임을 알리는 일’만 한다. 기능에서 태어나 상징으로 살아남은 디테일. 럭셔리 브랜드의 유산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실내 화면은 한 걸음 더 나간다. 벤틀리는 디스플레이 그래픽을 컴퓨터로 그리지 않았다.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수공예 크리스털 공방 ‘컴브리아 크리스탈(Cumbria Crystal)’에 이 프로젝트만을 위한 크리스털 조각을 주문 제작했고, 그것을 통과한 빛을 실제로 촬영해 화면 그래픽의 원본으로 썼다. 손으로 깎은 유리의 미세한 얼룩과 불균일함이 그대로 화면에 남는다.

드러머의 흔들리는 박자, 손으로 깎은 유리의 얼룩. 같은 논리다.


화면을 ‘덜 보여주는 기능’을 판다


토르칼 실내의 중심에는 시동 버튼을 감싼 금속 다이얼이 하나 있다. 이름은 ‘큐레이션 엔진(Curation Engine)’. 벤틀리는 이것을 “자동차 주얼리”라고 부른다.

이 다이얼은 서스펜션과 파워트레인만 바꾸는 기존 주행 모드와 다르다. 조명, 사운드, 공조, 공기질, 그리고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의 양까지 한꺼번에 바꾼다. 감각신경과학(sensory neuroscience)을 근거로 설계했다는 것이 벤틀리의 설명이다. 모드는 네 가지다.


  • 벤틀리 모드 — 기본값. 편안함과 운전 재미의 균형점.

  • 컴포트 모드 — 조명이 부드러워지고 실내의 속도가 느려진다. ‘디지털 디톡스’ 옵션을 켜면 화면에 뜨는 정보량 자체가 줄어든다.

  • 스포트 모드 — 사운드가 짙어지고 시각 정보가 날카로워진다.

  • 리프레시 모드 — 토르칼에만 있다. 외기 순환을 늘리고 조명을 밝혀 장거리 주행의 피로를 덜어낸다.

화면을 하나 더 붙이는 것이 경쟁력인 시장에서, 화면 정보를 줄이는 기능을 상품화했다. 공조와 볼륨의 물리 버튼도 그대로 남겼다. 터치스크린 일원화라는 업계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선택이다.

덜어내는 것을 옵션으로 판다. 지금 럭셔리가 서 있는 자리가 여기다.


뼈대는 포르쉐, 목적은 다르다


기술 골격은 공개된 정보로 상당 부분 짐작할 수 있다. 토르칼은 폭스바겐그룹의 800V 전기차 전용 플랫폼 PPE(Premium Platform Electric)를 쓴다. 포르쉐 카이엔 일렉트릭, 아우디 Q6 e-트론과 같은 뼈대다.


  • 배터리 — 카이엔 일렉트릭과 같은 113kWh급이 유력

  • 충전 — 약 7분 만에 100마일(약 161km) 주행분

  • 주행거리 — 로빈 페이지(Robin Page) 디자인 총괄은 고객이 원하는 지점을 300~350마일(약 483~563km)로 언급

  • 크기 — 전장 5m 안팎. 벤테이가보다 작은, 벤틀리 역사상 가장 작은 SUV

  • 일정 — 2025년 11월 크루 공장에서 선행 생산 시작, 2027년 본격 생산. 미국 인도는 2027년 3분기 전망

  • 가격 — 외신 추정 20만~25만 달러 (미확정)

주목할 것은 크기다. 벤틀리는 이 차를 ‘어반 럭셔리 SUV’로 규정했다. 벤테이가를 대체하지 않고 그 아래에 놓는다. 골프장과 시골 저택이 아니라 좁은 도심 도로와 지하 주차장을 상정한 벤틀리. 고객층의 나이도 함께 내려간다.

플랫폼은 포르쉐와 공유하되, 1,100마력을 넘나드는 카이엔 일렉트릭의 성능 수치를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은 낮다. 벤틀리가 반복해 쓰는 단어는 일관되게 ‘승차감’, ‘정숙성’, ‘조율’이다.


늦은 것이 아니라, 늦춘 것


토르칼은 원래 2025년에 나왔어야 했다. 벤틀리는 2021년 전동화 전환을 선언하며 2030년 완전 전기 브랜드를 목표로 걸었다. 그 계획은 수정됐다. 럭셔리 전기차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식었기 때문이다. 첫 전기차 출시는 미뤄졌고, 완전 전동화 시점도 2030년대 중반으로 물러났다. 그사이 W12 엔진 생산은 2024년에 종료됐다.

한쪽 문은 이미 닫혔고, 다른 쪽 문은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토르칼의 좌표가 거기다.

시장이 뜨거울 때 나왔다면 이 차는 ‘전동화 선언’이 됐을 것이다. 시장이 식은 지금 나오기 때문에, 다른 질문을 받는다. 엔진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남겨야 브랜드는 브랜드로 남는가.


데일리 인사이트


첫째, 유산은 기능이 사라진 뒤에 진짜 시험대에 오른다. 그릴은 이제 아무것도 식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긴다면 그것은 쓸모가 아니라 기억을 파는 일이다. 100년 된 디테일을 가진 브랜드만 쓸 수 있는 카드이자, 서사 없이 흉내 내면 곧바로 싸구려 장식으로 전락하는 카드이기도 하다.

둘째, 다음 럭셔리의 격전지는 감각이다. 물질의 과시에서 취향의 과시로, 다시 상태(狀態)의 과시로. 조명·공기·소리·정보량을 한 번에 조율해 ‘기분’을 상품으로 만든 큐레이션 엔진은 웰니스 산업이 자동차 실내로 들어온 사건에 가깝다. 호텔, 주거, 리테일 어디에나 같은 문법이 적용된다.

셋째, 불완전함이 프리미엄의 재료가 된다. 드러머의 흔들리는 박자, 손으로 깎은 크리스털의 얼룩. 벤틀리가 비싼 값에 팔려는 것은 정밀함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복제되는 시대에, 복제되지 않는 것은 오차뿐이다.


한 겹씩 깎여야 만들어지는 것


다시 크루의 그 작업장으로 돌아가 본다. 엔진 소리와 드럼 소리 사이를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찾으려던 것은 결국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였다.

토르칼이라는 이름을 빌려온 안달루시아의 석회암 지대도 마찬가지다. 수백만 년 동안 물과 바람이 한 번에 한 겹씩 깎아내며 만든 지형이다. 설계도도 없었고, 공개일도 없었다.

9월 23일에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새 SUV 한 대가 아니다. 엔진을 잃은 럭셔리가 무엇으로 자기를 증명하려 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답안이다.

깎여 나간 것이 아니라, 끝내 남은 것이 그 브랜드다.


이동철 | '감정설계자' 저자   hesi.reaserc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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