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인기글 >


누구도 막지 못할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면 기억해두세요, 1840년 8월 1일 [클래식 에세이]

1840년 8월 1일. 한 건물 앞에 눈물이 범벅이 된 한 더먹머리 사내가 서 있었다. 감격과 기쁨에 흐느끼고 있는 이 남자는 바로 불세출의 음악가, 슈만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6.8 ~ 1856.7.29)이었다. 도대체 그는 왜 이렇게 기쁨을 주체못하고 흐느끼고 있었을까?

슈만은 비크(Friedrich Wiek) 라는 대 음악가에서 사사했다. 그는 빈털터리지만 재능 있는 슈만을 단번에 알아보았고 기꺼이 그의 집에 그를 머물게 하면서, 혼신을 다해 가르쳤다. 그런데 이 호의가 두 남자에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운명의 장을 열어젖힐 줄을 그때는 비크도 슈만도 알지 못했다. 비크교수에게는 당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작은 꼬마 아이는 삼촌 같은 슈만을 몹시도 따랐다. 슈만도 이 아이를 살뜰하게 챙기고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쳐 주었다. 꼬마아이의 눈에 슈만은 모르는 것이 없는 정말 대단한 삼촌이었다. 시간이 흘러, 여자아이는 자라났고, 슈만은 그때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이 금지된 사랑도 자라났다는 것을.


< 독일 100마르크에 인쇄된 클라라 슈만 >

이 꼬마 여자아이의 이름은 클라라. 아버지는 비크교수는 대노했다. 은혜를 이렇게 갚다니. 내 앞에서 꺼져버려 이 배은 망덕한 놈. 비크의 노여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음악성 못지 않게, 인성 또한 좋았던 슈만은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이 착하디 착한 음악가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의외로 단호했다. 클라라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슈만이 바로 스승 비크교수를 법원에 고발한 것이다. 클라라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나 1840년 8월 1일, 이날은 바로 독일 라이프치히 법원은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을 허가한 판결을 내린 감격어린 날이었던 것. 

< 슈만과 클라라 > 


얼마나 기뻤을까? 젤리어 호프(SELLIERS HOF) 라는 집에서 처음 만난 슈만과 클라라는 10년뒤 클라라의 21번째 생일을 앞두고 부부가 된 것이다. 슈만은 둘의 결혼 기념으로 '은매화 (Myrten)'를 작곡하여 클라라에게 헌정했다. 은매화의 첫곡 '헌정(widmung)'은 클라라에 대한 슈만을 절절한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 슈만이 클라라에게 바친 은매화 중 '헌정' > 


이른 아침, '헌정'올 들으며 아침을 한번 시작해보라. 슈만의 벅찬 기쁨이 온 집안에 가득할 것이니 말이다. 

슈만이 8월1일의 판결을 기다리며 초초한 마음 속에서 1주만에 완성한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 부부가 함께 작곡한 사랑의 봄 (Liebesfrühling) 두곡도 함께 들어보기를 권한다. 



#하이엔드데일리 #클래식 #슈만 #클라라 


by. Berno 베르노


[저작권자 ⓒ하이엔드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타 분야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