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스포티파이가 등장했을 때 음악 산업은 공포에 빠졌다. "중간급 뮤지션들이 다 죽는다." 예측은 절반만 맞았다.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지 못한 채 CD 판매에 의존하던 중간급은 실제로 무너졌다. 그러나 시장 전체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적으로 커졌다.
숫자가 이것을 증명한다. 글로벌 음악 시장 매출은 2023년 286억 달러로, 2015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9년 연속 성장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이 하나 있다. 스포티파이에서 상위 로열티를 받는 아티스트의 80% 이상이 글로벌 데일리 탑 50에 들어가지 않은 인디 아티스트였다. 2024년 인디 아티스트와 인디 레이블이 스포티파이에서 벌어들인 돈만 50억 달러다. 중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중간의 문법이 바뀐 것이다.
AI가 패션 시장을 바꾸는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음악보다 훨씬 빠르다.
양극화라는 공포는 틀렸다
AI가 스타일을 무한 복제하는 시대가 오면 시장이 "명품 아니면 AI 복제품"으로 양극화된다는 예측이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이미 미국 소비자 3명 중 1명이 지난 12개월 안에 듀프(dupe) 제품을 구매했다. SHEIN은 AI로 72시간 안에 신제품을 만들어 배송한다. 제너레이티브 AI가 패션 업계에 가져올 영업이익 증가분은 향후 3~5년간 1,500억~2,750억 달러로 추정된다. 스타일의 복제는 이미 산업화됐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중간 브랜드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양극화가 아니라 다극화다. 하나의 거대한 중간 시장이 무너지는 대신, 수천 개의 작고 단단한 충성 시장이 생겨난다. 스트릿 브랜드, 컬트 브랜드 등 전세계적으로 나만의 유니크한 보석같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다.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챌린저 브랜드가 거인을 넘어섰다
패션과 가장 가까운 시장인 스포츠웨어에서 이 다극화가 가장 먼저 가시화됐다. 맥킨지 글로벌 패션 인덱스에 따르면 2024년, 호카·온러닝·뷰오리·알로요가 같은 챌린저 브랜드들이 스포츠웨어 시장 경제적 이익의 57%를 차지했다. 나이키·아디다스·푸마·언더아머라는 빅4를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다. 이들의 2020~2024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8%로, 기존 대형 브랜드(4%)를 14%포인트 앞질렀다.
이 브랜드들이 이긴 방식이 핵심이다.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한 게 아니었다. 더 좁은 시장을 더 깊이 팠다. 호카는 러닝 커뮤니티에, 뷰오리는 캘리포니아 요가 문화에, 짐샤크는 영국 헬스장 씬에 집중했다. 맥킨지는 이를 두고 "특화된 커뮤니티와의 진정성 있는 연결"이라고 표현했다. 뷰오리의 기업 가치는 2024년 55억 달러에 달했다. 특정 누군가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얼마나 강한 전략인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2019~2024년 사이, 이 챌린저 브랜드들은 니치 시장 공략만으로 나이키·아디다스의 시장 점유율을 3%포인트 가져왔다. 3%가 작게 들릴 수 있지만, 수천억 달러 규모 시장에서의 3%는 거대한 숫자다.
살아남는 중간과 사라지는 중간
다극화 시대에 모든 중간이 살아남는 건 아니다. 사라지는 중간과 살아남는 중간의 차이는 명확하다.
사라지는 중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무기로 삼는다. 명품보다 싸고, 저가보다 좋다. 이 포지션은 AI가 정확히 치고 들어오는 자리다. AI가 만든 "보테가 감성, 3만 원"이 나오는 순간 "보테가 감성, 30만 원"은 설 자리를 잃는다.
살아남는 중간은 다르다. 특정 커뮤니티의 언어를 소유한 브랜드.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 특정 철학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브랜드. 스포티파이 시대에 인디 아티스트들이 팬덤 기반 수익 모델로 살아남은 것처럼, AI 시대의 중간 브랜드도 충성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살아남는다.
규모가 아니라 밀도다. 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선택받는 브랜드가 아니라, 특정 사람들에게 깊이 선택받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작아지는 것이 전략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AI 시대 중간 브랜드의 생존 전략은 더 커지는 게 아니라 더 작아지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누군가의 브랜드가 되는 것.
일본의 브랜드 시장이 하나의 힌트다. 청바지만 50년째 만드는 브랜드, 특정 지역의 직물만 쓰는 브랜드, 등산을 진지하게 즐기는 사람만을 위한 아웃도어 브랜드. 이들은 시장을 넓히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사람들에게 깊이 파고든다. 그 깊이가 AI가 침범하지 못하는 해자가 된다.
한국에서도 이 방향의 브랜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정 서브컬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시작한 브랜드, 지역 장인의 기술과 현대 감성을 연결한 브랜드, 특정 라이프스타일 철학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브랜드. 이들이 AI 시대 중간 시장의 새로운 문법을 쓰고 있다.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중간이 다극화되면 소비자의 선택지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양해진다. 스포티파이 이후 세계의 아티스트 숫자가 역대 최대가 된 것처럼, AI 이후 세계의 브랜드 수도 역대 최대가 될 수 있다. AI가 스타일의 대량 복제를 담당하는 동안, 인간 브랜드들은 더 구체적이고 더 진정성 있는 세계를 들고 나온다.
단, 그 다양성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더 넓어지려는 유혹을 거부하고, 더 깊어지기로 선택한 브랜드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K-하이엔드 브랜드에게, 그리고 중간 브랜드에게
AI 이후 시장의 패자는 중간 브랜드가 아니다. 자신이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지 모르는 브랜드다. 호카가 러닝화 시장에서 나이키를 이긴 것은 모든 러너를 위한 브랜드가 되려 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지한 러너만을 위한 브랜드가 됐기 때문이다.
3천 명의 팬이 있는 브랜드가 30만 명의 무관심한 고객을 가진 브랜드보다 AI 시대에 더 강하다. 양극화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시장은 두 개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수천 개로 나뉜다. 그 수천 개 중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하나 안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브랜드가 되는 것. 그것이 AI 시대 브랜드의 생존이다.
2008년, 스포티파이가 등장했을 때 음악 산업은 공포에 빠졌다. "중간급 뮤지션들이 다 죽는다." 예측은 절반만 맞았다.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지 못한 채 CD 판매에 의존하던 중간급은 실제로 무너졌다. 그러나 시장 전체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적으로 커졌다.
숫자가 이것을 증명한다. 글로벌 음악 시장 매출은 2023년 286억 달러로, 2015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9년 연속 성장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이 하나 있다. 스포티파이에서 상위 로열티를 받는 아티스트의 80% 이상이 글로벌 데일리 탑 50에 들어가지 않은 인디 아티스트였다. 2024년 인디 아티스트와 인디 레이블이 스포티파이에서 벌어들인 돈만 50억 달러다. 중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중간의 문법이 바뀐 것이다.
AI가 패션 시장을 바꾸는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음악보다 훨씬 빠르다.
양극화라는 공포는 틀렸다
AI가 스타일을 무한 복제하는 시대가 오면 시장이 "명품 아니면 AI 복제품"으로 양극화된다는 예측이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이미 미국 소비자 3명 중 1명이 지난 12개월 안에 듀프(dupe) 제품을 구매했다. SHEIN은 AI로 72시간 안에 신제품을 만들어 배송한다. 제너레이티브 AI가 패션 업계에 가져올 영업이익 증가분은 향후 3~5년간 1,500억~2,750억 달러로 추정된다. 스타일의 복제는 이미 산업화됐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중간 브랜드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양극화가 아니라 다극화다. 하나의 거대한 중간 시장이 무너지는 대신, 수천 개의 작고 단단한 충성 시장이 생겨난다. 스트릿 브랜드, 컬트 브랜드 등 전세계적으로 나만의 유니크한 보석같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다.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챌린저 브랜드가 거인을 넘어섰다
패션과 가장 가까운 시장인 스포츠웨어에서 이 다극화가 가장 먼저 가시화됐다. 맥킨지 글로벌 패션 인덱스에 따르면 2024년, 호카·온러닝·뷰오리·알로요가 같은 챌린저 브랜드들이 스포츠웨어 시장 경제적 이익의 57%를 차지했다. 나이키·아디다스·푸마·언더아머라는 빅4를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다. 이들의 2020~2024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8%로, 기존 대형 브랜드(4%)를 14%포인트 앞질렀다.
이 브랜드들이 이긴 방식이 핵심이다.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한 게 아니었다. 더 좁은 시장을 더 깊이 팠다. 호카는 러닝 커뮤니티에, 뷰오리는 캘리포니아 요가 문화에, 짐샤크는 영국 헬스장 씬에 집중했다. 맥킨지는 이를 두고 "특화된 커뮤니티와의 진정성 있는 연결"이라고 표현했다. 뷰오리의 기업 가치는 2024년 55억 달러에 달했다. 특정 누군가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 얼마나 강한 전략인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2019~2024년 사이, 이 챌린저 브랜드들은 니치 시장 공략만으로 나이키·아디다스의 시장 점유율을 3%포인트 가져왔다. 3%가 작게 들릴 수 있지만, 수천억 달러 규모 시장에서의 3%는 거대한 숫자다.
살아남는 중간과 사라지는 중간
다극화 시대에 모든 중간이 살아남는 건 아니다. 사라지는 중간과 살아남는 중간의 차이는 명확하다.
사라지는 중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무기로 삼는다. 명품보다 싸고, 저가보다 좋다. 이 포지션은 AI가 정확히 치고 들어오는 자리다. AI가 만든 "보테가 감성, 3만 원"이 나오는 순간 "보테가 감성, 30만 원"은 설 자리를 잃는다.
살아남는 중간은 다르다. 특정 커뮤니티의 언어를 소유한 브랜드.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 특정 철학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브랜드. 스포티파이 시대에 인디 아티스트들이 팬덤 기반 수익 모델로 살아남은 것처럼, AI 시대의 중간 브랜드도 충성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살아남는다.
규모가 아니라 밀도다. 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선택받는 브랜드가 아니라, 특정 사람들에게 깊이 선택받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작아지는 것이 전략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AI 시대 중간 브랜드의 생존 전략은 더 커지는 게 아니라 더 작아지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누군가의 브랜드가 되는 것.
일본의 브랜드 시장이 하나의 힌트다. 청바지만 50년째 만드는 브랜드, 특정 지역의 직물만 쓰는 브랜드, 등산을 진지하게 즐기는 사람만을 위한 아웃도어 브랜드. 이들은 시장을 넓히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사람들에게 깊이 파고든다. 그 깊이가 AI가 침범하지 못하는 해자가 된다.
한국에서도 이 방향의 브랜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정 서브컬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시작한 브랜드, 지역 장인의 기술과 현대 감성을 연결한 브랜드, 특정 라이프스타일 철학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브랜드. 이들이 AI 시대 중간 시장의 새로운 문법을 쓰고 있다.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중간이 다극화되면 소비자의 선택지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양해진다. 스포티파이 이후 세계의 아티스트 숫자가 역대 최대가 된 것처럼, AI 이후 세계의 브랜드 수도 역대 최대가 될 수 있다. AI가 스타일의 대량 복제를 담당하는 동안, 인간 브랜드들은 더 구체적이고 더 진정성 있는 세계를 들고 나온다.
단, 그 다양성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더 넓어지려는 유혹을 거부하고, 더 깊어지기로 선택한 브랜드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K-하이엔드 브랜드에게, 그리고 중간 브랜드에게
AI 이후 시장의 패자는 중간 브랜드가 아니다. 자신이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지 모르는 브랜드다. 호카가 러닝화 시장에서 나이키를 이긴 것은 모든 러너를 위한 브랜드가 되려 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지한 러너만을 위한 브랜드가 됐기 때문이다.
3천 명의 팬이 있는 브랜드가 30만 명의 무관심한 고객을 가진 브랜드보다 AI 시대에 더 강하다. 양극화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시장은 두 개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수천 개로 나뉜다. 그 수천 개 중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하나 안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브랜드가 되는 것. 그것이 AI 시대 브랜드의 생존이다.
#K럭셔리 #KLuxury #하이엔드브랜드 #HighEndBrand #중간브랜드 #MidTierBrand #AI브랜드전략 #AIBrandStrategy #다극화 #Multipolarization #브랜드전략 #BrandStrategy #브랜드커뮤니티 #BrandCommunity #K패션 #KFashion #니치브랜드 #NicheBrand #챌린저브랜드 #ChallengerBrand #호카 #Hoka #뷰오리 #Vuori #맥킨지 #McKinsey #스포티파이 #Spotify
이주안 | 하이엔드전략연구소장 | hesi.research@gmail.com ⓒ 하이엔드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