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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면 팔리겠지 '시대의 종말, 콧대 높던 샤넬재팬의 대전환과 그 부활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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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에 빠진 샤넬 재판, 부활의 비결은? > 

샤넬 재팬은 사업 초기 브랜드력을 활용한 메이크업 상품에 주력 했다. 하지만 이내 이 사업 모델이 한계에 다다랐다. 더이상 샤넬 브랜드만으로 팔리지 않는 시장상황이 도래한 것. 
일본의 시장 상황을 조사하고 분석한 끝에 메이크업에서 스킨케어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스킨케어 제품은 메이크업 제품에 비해 사용량이 많기 때 문에 고객의 구매 빈도나 금액을 올리기 쉽다. 이 중요한 순간, 샤넬 재팬의 리샤르 콜라스Richard Collasse 사장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핵심 조직을 발표한다.1 조직 이름은 ‘클래시Clash팀’, 즉 파괴팀이다. 
 콜라스는 창조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파괴가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직 내에 널리 공포한 것이다. 클래시라는 팀명에는 변화와 도약을 위해서는 샤넬에 만연한 나태와 교만을 파괴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샤넬 재팬의 희망을 담은 클래시팀은 고객에 대한 개별 대응력 을 높이기 위해 CRM 을 활용했으며, 치밀 한 교육을 통해 고객별로 적극적인 개별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각 부문 책임자는 교체됐으며, 능력급을 도입해 적극적이고 성과를 내는 직원들에 대한 보상을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했다. 파괴는 곧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조직문화에서 상품으로 이어졌다. 샤넬은 클래시 프로젝트를 통해 양질의 우수한 인력을 대거 수혈해 조직의 체질을 바 꿈으로써 강자로 우뚝 섰다.


사실 샤넬은 그 역사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창업주 코코 샤넬은  웨스트민스터 공작, 보이 카펠 , 디미트리 대공 등 상류 사회의 남성과 화려하게 연애했지만 나에겐 일과 사랑외에 다른 시간이 없다며 결코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마치 디즈레일리등 여러 남성들과 화려한 연애를 즐겼지만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2차대전 중 샤넬이 독일 장교와 연인이 되면서 독일이 물러간뒤 전국민의 지탄을 받으며 샤넬은 철저히 몰락했다. 나찌의 간첩이라는 낙인이 붙으며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 사넬에게 등을 돌렸다.  스위스로 망명했던 샤넬, 하지만 이제 샤넬은 끝났다는 세간의 조롱속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절치부심하여 1954년 70세의 나이로 패션계로 컴백했다. 당시 울 소재의 샤넬 슈트를 선보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진흙탕에 빠진 자신을 스스로의 손으로 건져올린 것이다.  또 다른 위기는 1970년 1월 10일, 창업주 샤넬이 87세로 사망한 후 찾아왔다. 샤넬 사후 12년간 침체의 길을 걷던 1983년 칼 라거펠트를 전격 발탁하여 위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완벽하게 이해해서 샤넬을 재탄생 시켰고, 그의 크리에이티브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라거펠트가 샤넬의 숨겨진 양아들이라는 오해까지 살 정도였다. 

최근 한국에서 샤넬은 코로나위기속에서도 오히려 다시금 럭셔리 브랜드로 확고하게 다시 올라서는 모습이다. 9300억여원 매출에 1500억원대의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무려 81%가 줄어든 면세사업부의 매출을 국내사업에 끌어올리면서 실적방어에 성공했다. 

< 샤넬의 부활 공식 >

1. 샤넬은 정열적이고 공격적으로 자신의 바로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남자친구의 속옷에서 저지원단의 아이디어를 가져왔고, 승마복에서 바지 아이템을, 또한명의 남친 웨스터민스터 공작의 옷에서 트위드 자켓을 가져오는 등 샤넬에겐 그녀를 둘려싼 모든 환경이 연구소이자 디자인랩이었다.




  
2. 예술을 통해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이를 반영했다
샤넬은  피카소, 달리, 장콕도, 소설가 앙드레 지드, 대음악가 스트라빈스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넘나들며 교류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시대를 선행하는 도도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내는 데 능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시대를 항상 리드했던 이유중의 하나이다. 
살바도르 달리
3. 파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업가적 기질이 있었다. 
맞춤복인 오트꾸튀르가 유행할 때, 그녀는 기성복인 프레타포르테를 제작해 전 세계에 뿌렸다. 심지어 피에르가르뎅 같은 후배 디자이너를 후원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마음껏 쓰게했다. 이전까지 명품들은 복제품을 벌레처럼 취급했지만 샤넬은 반대로 이를 장려했다. 그는 짝퉁이 없는 명품은 명품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짝퉁을 샀던 사람은 반드시 진품을 갈망하게 되어 있는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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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rno 이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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