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S&P500 펀드를 산다. 수익률도 똑같다. 그런데 20년 뒤 손에 남는 돈은 다르다. 무엇에 담아서 샀느냐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투자자문사(RIA)들 사이에서 요즘 다시 주목받는 게 연금(annuity)이다. 비싸고 복잡하고 노후에 월급처럼 받는 상품, 이라는 오래된 이미지의 그 물건이다. 그런데 지금 자문사들이 이걸 꺼내는 이유는 '월급'이 아니라 '세금'이다.

세금이 오를 거라 믿지만, 아무도 안 움직인다
배경엔 명확한 공백이 있다. 네이션와이드 리타이어먼트 인스티튜트와 해리스폴이 올해 초 투자자 2,012명과 자문사 528곳을 조사한 결과, 투자자의 80%가 앞으로 세금이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중 실제로 재무 계획을 미리 조정하고 있다는 사람은 31%뿐이었다. 34%는 세금을 오직 신고 시즌에만 생각한다. 반면 자문사의 60%는 이미 연금이나 세금 효율적인 소득 상품을 권하기 시작했다.
불안은 80%, 행동은 31%. 이 49%p의 틈에서 장사가 벌어진다. 실제로 미국 연금 판매액은 2025년 4,641억 달러로 4년 연속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첫번째 쉘 — 한도가 없고, 꺼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401(k)나 IRA는 좋은 그릇이다. 문제는 자산가에겐 너무 작다는 것. 한도를 이미 다 채운 사람에게 남는 선택지가 비적격(nonqualified) 연금이다. 납입 한도가 없고, 의무 인출 규정(RMD)도 적용되지 않는다. 즉 평생 건드리지 않고 이연시킬 수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변화가 붙었다. 수수료다. 투자 기능만 남긴 IOVA(투자 전용 변액연금)가 등장하면서 가격표가 바뀌었다. 기사에 소개된 네이션와이드의 모뉴먼트 어드바이저는 월 20달러, 연 240달러 정액이다. 50개 이상 운용사의 300개 넘는 펀드를 담을 수 있다. 비싼 보험이 아니라 싼 껍데기가 된 것이다.
두번째 쉘 — 상속 시 터지는 '세금 폭탄' 해체하기
이연의 대가는 언제나 나중에 온다. 물려받을 때다. 연금은 부동산이나 주식과 달리 취득가액 상향조정(step-up in basis)을 받지 못한다. 그대로 받으면 일시금에 소득세가 한꺼번에 붙는다.
네이션와이드 어드밴스드 컨설팅 그룹의 톰 던컨은 두 가지 장치를 든다. 하나는 일시금 대신 매년 나눠 받는 '스트레치' 방식으로 세율 구간을 관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상속세를 낸 자산이라면 피상속인 소득(IRD) 공제를 적용해 과세 대상을 크게 줄이는 것이다. 구조를 어떻게 짜두느냐에 따라 같은 자산의 세후 가치가 달라진다.
세번째 쉘 — 신탁 안에 연금을 넣는다
가장 기술적인 건 신탁과의 결합이다. 신탁은 통제권·비공개성 때문에 자산가들이 선호하지만, 세제상 약점이 있다. 개인보다 훨씬 낮은 소득 구간에서 최고세율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이때 신탁 안에서 비적격 연금을 보유하고 수익자가 모두 자연인이면, 조건에 따라 과세 이연 효과를 살려 신탁의 연간 세금 부담을 눌러둘 수 있다.
껍데기 안에 껍데기를 넣는 구조다. 이게 요즘 미국 자문 시장에서 팔리는 설계다.
한국은 쉘 자체가 좁다
그럼 한국은? 구조는 비슷하지만 사이즈가 다르다.
우리 저축성보험의 보험차익 비과세는 일시납 1억 원, 월적립식은 월 150만 원, 둘 다 10년 이상 유지가 조건이다. 2017년 이 한도가 생긴 논리는 단순했다. 1억을 10년 묶어둘 수 있으면 부자라는 것. 미국이 '한도 없는 이연'을 자산가용 도구로 키우는 동안, 한국은 같은 도구의 입구를 좁혀놓은 셈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남은 큰 문은 하나다. 55세 이후 사망 시까지 받는 종신형 연금은 납입 한도가 없다. 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를 일치시키는 등 요건은 까다롭지만, 금액 제한이 없는 비과세 통로는 사실상 여기뿐이다. 연금저축·IRP(합산 연 900만 원 세액공제)는 환급용 그릇이지 이연용 그릇이 아니다.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중요
던컨의 말을 옮기면, 연금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놀라운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이 핵심이다.
37세든 57세든 적용되는 원칙은 같다. 수익률 몇 %를 더 쫓는 동안, 같은 자산을 어디에 담았는지에 따라 세후 결과는 조용히 갈린다. 투자에서 상품 선택은 눈에 보이고, 껍데기 선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쪽이 대개 더 크다.
※ 본 기사는 정보 제공용이며 세무·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적용은 반드시 세무 전문가와 확인해야 합니다.
by. 이동철 | 하이엔드전략연구소 | hesi.reaserc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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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S&P500 펀드를 산다. 수익률도 똑같다. 그런데 20년 뒤 손에 남는 돈은 다르다. 무엇에 담아서 샀느냐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투자자문사(RIA)들 사이에서 요즘 다시 주목받는 게 연금(annuity)이다. 비싸고 복잡하고 노후에 월급처럼 받는 상품, 이라는 오래된 이미지의 그 물건이다. 그런데 지금 자문사들이 이걸 꺼내는 이유는 '월급'이 아니라 '세금'이다.
세금이 오를 거라 믿지만, 아무도 안 움직인다
배경엔 명확한 공백이 있다. 네이션와이드 리타이어먼트 인스티튜트와 해리스폴이 올해 초 투자자 2,012명과 자문사 528곳을 조사한 결과, 투자자의 80%가 앞으로 세금이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중 실제로 재무 계획을 미리 조정하고 있다는 사람은 31%뿐이었다. 34%는 세금을 오직 신고 시즌에만 생각한다. 반면 자문사의 60%는 이미 연금이나 세금 효율적인 소득 상품을 권하기 시작했다.
불안은 80%, 행동은 31%. 이 49%p의 틈에서 장사가 벌어진다. 실제로 미국 연금 판매액은 2025년 4,641억 달러로 4년 연속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첫번째 쉘 — 한도가 없고, 꺼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401(k)나 IRA는 좋은 그릇이다. 문제는 자산가에겐 너무 작다는 것. 한도를 이미 다 채운 사람에게 남는 선택지가 비적격(nonqualified) 연금이다. 납입 한도가 없고, 의무 인출 규정(RMD)도 적용되지 않는다. 즉 평생 건드리지 않고 이연시킬 수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변화가 붙었다. 수수료다. 투자 기능만 남긴 IOVA(투자 전용 변액연금)가 등장하면서 가격표가 바뀌었다. 기사에 소개된 네이션와이드의 모뉴먼트 어드바이저는 월 20달러, 연 240달러 정액이다. 50개 이상 운용사의 300개 넘는 펀드를 담을 수 있다. 비싼 보험이 아니라 싼 껍데기가 된 것이다.
두번째 쉘 — 상속 시 터지는 '세금 폭탄' 해체하기
이연의 대가는 언제나 나중에 온다. 물려받을 때다. 연금은 부동산이나 주식과 달리 취득가액 상향조정(step-up in basis)을 받지 못한다. 그대로 받으면 일시금에 소득세가 한꺼번에 붙는다.
네이션와이드 어드밴스드 컨설팅 그룹의 톰 던컨은 두 가지 장치를 든다. 하나는 일시금 대신 매년 나눠 받는 '스트레치' 방식으로 세율 구간을 관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상속세를 낸 자산이라면 피상속인 소득(IRD) 공제를 적용해 과세 대상을 크게 줄이는 것이다. 구조를 어떻게 짜두느냐에 따라 같은 자산의 세후 가치가 달라진다.
세번째 쉘 — 신탁 안에 연금을 넣는다
가장 기술적인 건 신탁과의 결합이다. 신탁은 통제권·비공개성 때문에 자산가들이 선호하지만, 세제상 약점이 있다. 개인보다 훨씬 낮은 소득 구간에서 최고세율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이때 신탁 안에서 비적격 연금을 보유하고 수익자가 모두 자연인이면, 조건에 따라 과세 이연 효과를 살려 신탁의 연간 세금 부담을 눌러둘 수 있다.
껍데기 안에 껍데기를 넣는 구조다. 이게 요즘 미국 자문 시장에서 팔리는 설계다.
한국은 쉘 자체가 좁다
그럼 한국은? 구조는 비슷하지만 사이즈가 다르다.
우리 저축성보험의 보험차익 비과세는 일시납 1억 원, 월적립식은 월 150만 원, 둘 다 10년 이상 유지가 조건이다. 2017년 이 한도가 생긴 논리는 단순했다. 1억을 10년 묶어둘 수 있으면 부자라는 것. 미국이 '한도 없는 이연'을 자산가용 도구로 키우는 동안, 한국은 같은 도구의 입구를 좁혀놓은 셈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남은 큰 문은 하나다. 55세 이후 사망 시까지 받는 종신형 연금은 납입 한도가 없다. 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를 일치시키는 등 요건은 까다롭지만, 금액 제한이 없는 비과세 통로는 사실상 여기뿐이다. 연금저축·IRP(합산 연 900만 원 세액공제)는 환급용 그릇이지 이연용 그릇이 아니다.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중요
던컨의 말을 옮기면, 연금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놀라운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이 핵심이다.
37세든 57세든 적용되는 원칙은 같다. 수익률 몇 %를 더 쫓는 동안, 같은 자산을 어디에 담았는지에 따라 세후 결과는 조용히 갈린다. 투자에서 상품 선택은 눈에 보이고, 껍데기 선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쪽이 대개 더 크다.
※ 본 기사는 정보 제공용이며 세무·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적용은 반드시 세무 전문가와 확인해야 합니다.
by. 이동철 | 하이엔드전략연구소 | hesi.reaserc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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