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간에 배웠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라고.
그래서 우리는 믿게 됐다. 나쁜 것 둘을 합치면 좋은 것이 된다고.
하지만 삶은 수학이 아니다.
부패한 정치인끼리 연대해도 좋은 정치가 되지 않는다.
불공정한 관행 위에 또 다른 불공정을 쌓아도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잘못된 위로끼리 모여도 진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이너스 더하기 마이너스는, 언제나 더 큰 마이너스일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이 '음수의 덧셈을 양수로 착각하는' 사고방식들이다.
1. "나만 손해 보지 않으면 된다" — 제로섬 생존주의
한국은 오랫동안 희소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사회였다. SKY 대학 입학 정원은 정해져 있고, 대기업 공채 TO는 한정되어 있고, 강남 아파트는 모두가 가질 수 없다. 이 구조 속에서 '내가 이기면 네가 지는' 제로섬 사고가 DNA처럼 각인됐다.
문제는 이 사고방식이 성장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작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성공을 보면 축하하기보다 '내가 상대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해석한다. 동료의 승진을 기뻐하지 못하고, 이웃의 풍요를 불편해한다.
두 개의 마이너스—내 불행과 타인의 실패—를 더해 '그나마 위안'을 얻으려는 사회는, 전체적으로 더 깊은 불행으로 수렴한다. 진짜 플러스는 타인의 성장이 나의 기회가 되는 포지티브섬 설계에서만 나온다.
2. "원래 다 그래" — 관행의 절대화
비리를 지적하면 돌아오는 말이 있다. "원래 다 그렇게 해요." 불합리한 관행을 문제 삼으면 "원래부터 이랬는데 왜 새삼스럽게"라는 반응이 온다.
이 사고방식은 두 개의 마이너스를 합산해 규범으로 만드는 연금술이다. 잘못된 관행(마이너스)과 오랜 시간(또 다른 마이너스)을 더해 '정당성'이라는 가짜 플러스를 만들어낸다. 오래된 잘못은 잘못이 아니게 되고,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불합리는 합리가 된다.
관행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지 '지금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다. 지속된 시간이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순간, 사회는 스스로를 개혁할 언어를 잃어버린다.
3. "저 사람도 잘못했잖아" — 상대적 면죄부
정치 토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논리다. A의 잘못을 지적하면 "그럼 B는요?"라는 반문이 날아온다. 내 편의 부패를 비판받으면 "상대편도 마찬가지잖아요"로 응수한다.
두 개의 잘못이 서로를 상쇄해 무죄가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두 개의 부패는 청렴이 아니다. 두 개의 거짓말이 진실이 되지 않듯.
이 사고방식이 뿌리내린 사회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비교를 통한 면죄부 발급이 반복될수록 기준선은 계속 낮아지고, 결국 '잘못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보다 덜 잘못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
4. "우리가 남이가" — 내집단 결속의 부패화
한국만큼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나라가 없다. 우리 엄마, 우리 남편, 우리 회사. 개인을 집단 속에 녹여내는 이 언어 습관은 강한 유대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면죄부 발급 시스템이기도 하다.
잘못된 편들기(마이너스)에 '의리'라는 명분(마이너스)을 더해 '공동체'라는 가짜 플러스를 만드는 구조다. 내 편이면 부패도 감싸고, 우리 집단이면 불합리도 정당화된다. 학연, 지연, 혈연이 촘촘하게 짜인 이 네트워크 안에서 비판은 배신이 되고, 침묵은 의리가 된다.
공동체는 서로의 성장을 돕는 구조일 때 진짜 플러스다. 서로의 잘못을 감춰주는 구조가 되는 순간,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라 공모다. "우리가 남이가"는 때로 가장 따뜻한 말처럼 들리지만, 가장 강력한 부패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5. "좋은 게 좋은 거지" — 갈등 회피의 미덕화
한국 사회에서 직접적인 갈등은 종종 '예의 없음'으로 해석된다. 반대 의견을 명확히 표명하면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이 되고, 불편한 진실을 꺼내면 '굳이 저런 말을'이라는 시선을 받는다.
표면적 조화라는 가짜 플러스를 위해 실질적 문제를 덮는 이 방식은 결국 더 큰 충돌을 예약해두는 행위다. 말하지 않은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억눌린 채 쌓여, 임계점에서 폭발한다.
건강한 사회는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다. 갈등을 표면화하고, 토론하고, 해소할 수 있는 사회다. '좋은 게 좋은 거'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가 진화하는 것을 막는다.
6. "남들이 하니까 나도" — 군중을 진리로 착각하기
부동산 투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하니까 뒤처지지 않으려 한다. 사교육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 시키면 내 아이만 손해 볼 것 같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것이 곧 '그렇게 해야 한다'의 이유가 되는 사회.
개인의 합리적 판단—이건 잘못됐다—과 집단적 행동 압력—하지 않으면 나만 바보—이 만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가짜 정당성을 만든다.
군중의 크기는 방향의 올바름을 보증하지 않는다. 모두가 달려가는 절벽이라도, 절벽은 절벽이다. 남들이 한다는 것은 참고 정보일 뿐, 행동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7. "나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데" — 보상 심리의 합리화
IMF를 버텼고, 군사독재를 견뎠고, 맨손으로 이 나라를 일으켰다. 그 서사는 진실이고, 그 고통은 실재했다. 문제는 그 고통이 현재의 부당함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때다.
과거의 희생(마이너스)과 현재의 방종(마이너스)을 더해 '당연한 권리'라는 가짜 플러스를 만드는 논리다. 내가 고생했으니 후배는 당연히 나를 대우해야 하고, 우리 세대가 희생했으니 다음 세대는 그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내가 참았으니 나도 이제 누려도 된다는 식이다.
고통은 공감받아야 하지만,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헌신이 현재의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이, 지금 내가 누군가를 힘들게 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가장 위험한 기득권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믿는 기득권이다.
진짜 플러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수학에서 진짜 플러스를 만들려면 처음부터 플러스를 더해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것 두 개를 합쳐 옳은 것을 만들 수는 없다. 불편한 갈등을 직시하고, 관행을 의심하고, 타인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문화—이것이 진짜 플러스의 재료다.
한국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닐 수 있다. 지금껏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오래된 사고방식을, 하나씩 내려놓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마이너스 플러스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수학 시간에 배웠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라고. 그래서 우리는 믿게 됐다. 나쁜 것 둘을 합치면 좋은 것이 된다고.
하지만 삶은 수학이 아니다. 부패한 정치인끼리 연대해도 좋은 정치가 되지 않는다. 불공정한 관행 위에 또 다른 불공정을 쌓아도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잘못된 위로끼리 모여도 진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이너스 더하기 마이너스는, 언제나 더 큰 마이너스일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이 '음수의 덧셈을 양수로 착각하는' 사고방식들이다.
1. "나만 손해 보지 않으면 된다" — 제로섬 생존주의
한국은 오랫동안 희소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사회였다. SKY 대학 입학 정원은 정해져 있고, 대기업 공채 TO는 한정되어 있고, 강남 아파트는 모두가 가질 수 없다. 이 구조 속에서 '내가 이기면 네가 지는' 제로섬 사고가 DNA처럼 각인됐다.
문제는 이 사고방식이 성장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작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성공을 보면 축하하기보다 '내가 상대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해석한다. 동료의 승진을 기뻐하지 못하고, 이웃의 풍요를 불편해한다.
두 개의 마이너스—내 불행과 타인의 실패—를 더해 '그나마 위안'을 얻으려는 사회는, 전체적으로 더 깊은 불행으로 수렴한다. 진짜 플러스는 타인의 성장이 나의 기회가 되는 포지티브섬 설계에서만 나온다.
2. "원래 다 그래" — 관행의 절대화
비리를 지적하면 돌아오는 말이 있다. "원래 다 그렇게 해요." 불합리한 관행을 문제 삼으면 "원래부터 이랬는데 왜 새삼스럽게"라는 반응이 온다.
이 사고방식은 두 개의 마이너스를 합산해 규범으로 만드는 연금술이다. 잘못된 관행(마이너스)과 오랜 시간(또 다른 마이너스)을 더해 '정당성'이라는 가짜 플러스를 만들어낸다. 오래된 잘못은 잘못이 아니게 되고,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불합리는 합리가 된다.
관행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지 '지금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다. 지속된 시간이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순간, 사회는 스스로를 개혁할 언어를 잃어버린다.
3. "저 사람도 잘못했잖아" — 상대적 면죄부
정치 토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논리다. A의 잘못을 지적하면 "그럼 B는요?"라는 반문이 날아온다. 내 편의 부패를 비판받으면 "상대편도 마찬가지잖아요"로 응수한다.
두 개의 잘못이 서로를 상쇄해 무죄가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두 개의 부패는 청렴이 아니다. 두 개의 거짓말이 진실이 되지 않듯.
이 사고방식이 뿌리내린 사회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비교를 통한 면죄부 발급이 반복될수록 기준선은 계속 낮아지고, 결국 '잘못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보다 덜 잘못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
4. "우리가 남이가" — 내집단 결속의 부패화
한국만큼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나라가 없다. 우리 엄마, 우리 남편, 우리 회사. 개인을 집단 속에 녹여내는 이 언어 습관은 강한 유대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면죄부 발급 시스템이기도 하다.
잘못된 편들기(마이너스)에 '의리'라는 명분(마이너스)을 더해 '공동체'라는 가짜 플러스를 만드는 구조다. 내 편이면 부패도 감싸고, 우리 집단이면 불합리도 정당화된다. 학연, 지연, 혈연이 촘촘하게 짜인 이 네트워크 안에서 비판은 배신이 되고, 침묵은 의리가 된다.
공동체는 서로의 성장을 돕는 구조일 때 진짜 플러스다. 서로의 잘못을 감춰주는 구조가 되는 순간,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라 공모다. "우리가 남이가"는 때로 가장 따뜻한 말처럼 들리지만, 가장 강력한 부패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5. "좋은 게 좋은 거지" — 갈등 회피의 미덕화
한국 사회에서 직접적인 갈등은 종종 '예의 없음'으로 해석된다. 반대 의견을 명확히 표명하면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이 되고, 불편한 진실을 꺼내면 '굳이 저런 말을'이라는 시선을 받는다.
표면적 조화라는 가짜 플러스를 위해 실질적 문제를 덮는 이 방식은 결국 더 큰 충돌을 예약해두는 행위다. 말하지 않은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억눌린 채 쌓여, 임계점에서 폭발한다.
건강한 사회는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다. 갈등을 표면화하고, 토론하고, 해소할 수 있는 사회다. '좋은 게 좋은 거'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가 진화하는 것을 막는다.
6. "남들이 하니까 나도" — 군중을 진리로 착각하기
부동산 투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하니까 뒤처지지 않으려 한다. 사교육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 시키면 내 아이만 손해 볼 것 같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것이 곧 '그렇게 해야 한다'의 이유가 되는 사회.
개인의 합리적 판단—이건 잘못됐다—과 집단적 행동 압력—하지 않으면 나만 바보—이 만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가짜 정당성을 만든다.
군중의 크기는 방향의 올바름을 보증하지 않는다. 모두가 달려가는 절벽이라도, 절벽은 절벽이다. 남들이 한다는 것은 참고 정보일 뿐, 행동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7. "나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데" — 보상 심리의 합리화
IMF를 버텼고, 군사독재를 견뎠고, 맨손으로 이 나라를 일으켰다. 그 서사는 진실이고, 그 고통은 실재했다. 문제는 그 고통이 현재의 부당함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때다.
과거의 희생(마이너스)과 현재의 방종(마이너스)을 더해 '당연한 권리'라는 가짜 플러스를 만드는 논리다. 내가 고생했으니 후배는 당연히 나를 대우해야 하고, 우리 세대가 희생했으니 다음 세대는 그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내가 참았으니 나도 이제 누려도 된다는 식이다.
고통은 공감받아야 하지만,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헌신이 현재의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이, 지금 내가 누군가를 힘들게 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가장 위험한 기득권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믿는 기득권이다.
진짜 플러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수학에서 진짜 플러스를 만들려면 처음부터 플러스를 더해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것 두 개를 합쳐 옳은 것을 만들 수는 없다. 불편한 갈등을 직시하고, 관행을 의심하고, 타인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문화—이것이 진짜 플러스의 재료다.
한국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닐 수 있다. 지금껏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오래된 사고방식을, 하나씩 내려놓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마이너스 플러스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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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안 | hesi.research@gmail.com 하이엔드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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